습지, 늪은 지구상에서 단일 생태계 유형 중 영양물질이 가장 풍부한 곳이다. 당연히 생산성과 생물종다양성이 높다. 이곳을 논으로 만들면 상대적으로 힘들이지 않고 풍부한 수확을 올릴 수 있다. 대략 한 말의 볍씨를 심어 벼 4가마를 수확할 수 있는 면적인 ‘마지기’는 약 150~300평까지 지역마다 다른데, 한 마지기 면적이 150평으로 가장 작은 동네는 오랜 세월 동안 하천이 범람하던 늪지대를 낀 지역이다. 땅에 양분이 풍부하면 벼를 촘촘히 심어도 잘 자라기 때문이다. 배고프고 가난하던 시절 한 톨의 쌀이라도 더 수확하기 위해 늪지를 메워 논경작지로 만드는 일은 국가와 개인 모두 절대적으로 해결해야 할 우선과제였다. 범람을 거듭하며 수만 년의 에너지가 응축된 늪지에 제방을 쌓아 풍부한 수확을 올려 배고픔을 탈출한 경험은 당시를 산 어르신들이라면 온몸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토건장비들이 여의치 않을 때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말 그대로 순수 노동으로 제방을 쌓아 왔던 어르신들의 헌신으로 그 많던 범람원 늪지대는 빠르게 사라졌다. 어르신들에게 늪지대란 훌륭한 논이 되어야 할 곳이 버려진 안타까운 곳이며, 이곳에 터를 잡은 수많은 새들과 동물들은 곡식을 훔쳐가는 유해조수일 뿐이다. 늪지를 그대로 둔다는 것은 배고픔을 기억하는 새마을운동세대들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반경제적 행위인 것이다. 이미 쌀이 넘쳐나 논에 다른 작물을 재배하면 지원금을 주고, 심지어 논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만 해도 돈을 주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늪지대를 없애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들여 제방을 쌓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렇게 늪지대를 없애는 사업은 4대강사업을 통해 분명 실이 훨씬 큼을 확인했음에도 지금도 멈추지 않고 모든 지천으로 확장되어 늪지대를 없애고 있다.

생산량이 많은 토지는 적은 노력으로 풍부한 먹이를 사냥할 수 있으니 동물 입장에서도 훌륭한 서식처가 된다. 이들이 안정적으로 살던 늪지를 사람이 차지했으니 당연히 야생동물은 급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늪지가 주된 서식지인 동물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기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새마을운동이 활발해질 즈음 한반도에서 사라진,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담긴 처량한 목소리의 주인공 ‘따오기’도 사람과의 경쟁에서 도태된 종 중 하나이다.

늪지를 메우던 새마을운동과 함께 사라진 따오기 40마리가 10년의 노력 끝에 지난 5월 우포늪 사육장에서 야생으로 날았다. 따오기 서식처인 늪지를 꾸준히 확장하겠다는 창녕군의 의지와 함께 말이다. 야생에서 발견된 지 40년이 넘은 멸종종의 복원이니 창녕군의 노력에 너무 감사하며 이 아이들이 잘 적응하길 바라 본다. 그런데 이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이율배반적 늪지훼손을 다른 이도 아닌, 10년간 따오기를 증식, 방사한 경남 창녕군이 진행하고 있다. 따오기가 새장에서 나오면 곧바로 찾을 것이라 예상한, 우포늪에서 불과 10㎞ 남짓 떨어진 대봉늪 한가운데를 막는, 자연습지를 훼손하는 제방공사가 따오기 방사와 함께 진행 중인 것이다. 제방공사를 위해 축구장 22개 크기의, 나라에서 인정한 몇 안되는 1등급 습지를 단 3시간 만에 조사한 후 환경적 가치가 없다고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예상대로 방사한 따오기 중 한 마리는 공사로 인해 훼손돼가는 열악한 여건에도 대봉늪을 찾았고 그곳에는 지금도 다양한 멸종위기종의 서식 흔적이 널려 있다. 발 달린 동물은 그 어떤 개발에도 다른 곳에 가서 잘 산다는 환경영향평가는 대체 왜 하는지? 거짓으로 포장한 늪지대 훼손공사를 멈춰야 하는 이유로 무엇이 더 필요할까?

홍수와 재난을 막기 위해 이미 70년대부터 하천 제방을 제거해 온 독일과는 반대로 지금도 전국 지천의 제방은 높아져만 가고 홍수를 막는, 따오기의 서식처 늪지대는 사라지고 있다. 새장 밖을 나온 따오기를 맞이하는 곳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죽음의 함정이 아니길 바란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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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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