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직설

떡국, 이 조촐하고 우아한 음식이 언제부터 한국인의 새해 명절에 깃들었을까. 알 길이 없다. 문헌을 뒤지면 김매순(金邁淳, 1776~1840)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며 홍석모(洪錫謨,1781~1857)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속에 오늘날과 비슷한 떡국이 등장한다. 조선 후기 문인들이 기록한 소고기 바탕의 장국에 끓인 떡국은 방신영이나 조자호 등 식민지 시기에 활동한 음식 연구자들의 음식책 속에서도 이어졌다.

서울 중심 기록 밖의 떡국은 더욱 다양하다. 지역마다 떡을 다루는 방식도 다르고,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떡국에 얼마든지 창의적으로 쓰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개성의 조랭이떡국은 어슷썬 떡이 아니라 누에고치 모양으로 가운데가 들어가도록 만든 떡을 쓴다. 떡의 모양도, 식감도 재미나다. 경주 쪽에는 옹근 원형으로 떡을 썰어 끓이기도 한다. 굴이나 조개가 많이 나는 데서는 굴과 조개가 떡국의 바탕이 된다. 전남 해안의 매생이떡국도 별미이다. 마침 굴과 매생이는 나는 철도 비슷하고 서로 맛의 조화도 뛰어나다. 굴과 매생이가 다 잘 나는 지역에는 당연히 굴매생이떡국이 있다. 충북 바다 쪽에서는 미역떡국을 끓였고, 경남 해안에는 물메기떡국도 있었다. 1960년대 이후 멸치가 본격적으로 한국인의 육수거리가 되면서는 당연히 멸치떡국이 등장했다. 강원도의 황태떡국은 더 설명할 것도 없겠다. 다슬기가 잘 잡히는 호서 내륙에선 다슬기 육수에 된장 간을 해 다슬기떡국을 해 먹기도 했다. 광주를 중심으로 한 호남 내륙에는 닭고기장조림인 ‘닭장’을 바탕으로 한 닭장떡국이 있다. 고기는 물론 뼈에서 우러난 닭의 풍미와 완성된 장조림의 감칠맛이 흰떡과 어울린 닭장떡국 또한 한 번 맛을 보면 잊을 수 없는 별미다.

일본에서도 새해에 떡국을 먹는다. 오조니(お煮)가 그것이다. 오조니는 멥쌀떡이 아니라 찹쌀떡(もち) 떡국이다. 지역마다 집집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해 먹는 점은 한국이나 마찬가지이다. 한국보다는 큰 떡덩이를 쓰는데, 떡을 국물에 얹기도, 국물을 떡에 끼얹기도 한다. 떡을 구워 쓰기도 한다. 떡 모양은 사각형, 원형, 타원형으로 크게 나뉜다. 집집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도쿄 쪽에선 사각형 떡이 간장 또는 소금으로 간한 맑은 국물에 어울린 모습이다. 교토 쪽에선 원형 떡이 일식 된장, 특히 흰 미소에 어울린 모습이다. 지역에 따라, 가정에 따라 팥죽에 흰떡을 넣기도 하고, 팥소 넣은 떡을 쓰기도 한다.

어떻든 공통점은 떡이다. 중국 대륙의 강남, 벼농사 문화권에서는 연고(年 ), 곧 말 그대로 ‘설떡’을 먹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마다 집집마다, 새해를 맞아 짭짤하거나 기름지거나 달콤한 설떡을 해 먹으며 한 해를 맞는다. 예전에 떡이란 벼농사를 잘 지어, 수확과 보관까지 잘해 드디어 공동체가 연말연시에 한 번 해 먹을 수 있는 별미였다. 벼농사 지어 살아온 민족과 지역의 문화 속에서 떡은, 더구나 흰떡은 한 해를 잘 살아온 끝에 다시 한 해의 시작을 맞았음을 환기하는 음식이다. 이를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중국 대륙의 벼농사 지역에서나 저마다 다른 문화적 토양 위에서 다양하게 먹어온 것이다.

떡국도 간편식의 물결을 타고 다양한 용기와 포장으로 나오고 있다. 포장만 뜯어 데우면, 또는 용기에 끓는 물만 부으면 언제든 떡국을 먹을 수 있는 시대이다. 얼른 먹는 한 끼니로 소용되는 셈인데, 이 간편식이 오로지 어슷썬 얇은 가래떡에 진한 사골 국물 일색인 점은 아쉽다. 기계 사출로 가래떡을 뽑기 전엔 떡매질의 온기가 남은 흰떡 덩이를 손으로 비벼 늘여 뽑았다. 쌀의 입자는 오늘날보다 더 잘 살아 있게 마련이다. 떡국은 끓여야 하고 떡매질할 틈이 없다면 쌀가루를 익반죽해 생떡국을 끓이기도 했다. 떡의 굵기, 모양, 입자, 제법, 장국의 바탕에 이르기까지 지역마다 집집마다 무수한 조합이 있었다.

이 다채롭고 다양한 떡국의 방식에서 또 다른 매력을 새로이 발견할 길은 없을까. 시장에서 매력을 뽐내 소비자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산업에서마저 그저 서울식 하나구나, 떡국마저 그렇구나, 새삼스럽다. 조선 후기에 이어 오늘까지, 떡국도 서울이 다 먹어치웠다. 서울뿐이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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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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