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심상찮다. 더위도 안 타고 자연에 순응하자 주의라 평생 에어컨 없이 살았는데 작년엔 쪄죽을 것 같은 공포심에 한 대 들여놓고야 말았다. 올해는 5월 초부터 햇살이 예사롭지 않더니 첫 폭염주의보가 5월15일 광주에서 울렸다. 사상 최악의 폭염을 기록한 지난해에도 폭염주의보는 7월15일에 발령되었건만 올해는 두 달이나 빨라졌다. 그새 광주에는 두 번째 폭염주의보가 내렸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 남동부 플로리다주, 조지아주 등도 섭씨 40도에 육박하여 역대 5월 기온의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 26일 일본 홋카이도 사로마에서도 기온이 39.5도까지 올라 역대 5월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미 국립기상청(NWS)을 포함, 국내외 과학자들도 올해 지구 평균기온이 역대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록이 한번 깨지면 우연이지만 매번 깨지면 변화가 된다.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가 대기에 계속 쌓이면서 이런 기상이변은 계속될 텐데, 대기 중 이산화탄소량이 지난 11일 1958년 관측 이후 처음으로 415ppm을 돌파하며 인류 역사상 최고점을 기록했다. CNN에 따르면 심지어 호모 사피엔스에서 인류가 진화한 80만년 만에 가장 높은 CO2 농도란다. 이런 빅뉴스가 우리나라에서는 해외토픽처럼 스쳐지나갔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고, 최근 3년간 이산화탄소 농도가 되레 증가했다는 것도 심각한 일이다. 세계 196개국이 2015년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서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제한하자고 협약까지 했는데 말이다.  

폭염을 앞두고 정부에서는 전기요금을 한시적으로 인하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전 통계에 따르면 작년 1인당 전기 소모량은 역대 최고기록을 세워 2000년과 비교해 무려 2배나 썼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보다 많이 썼고, 가격이 OECD 주요 국가 중 가장 싼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기후변화의 정치학>의 저자 앤서니 기든스는 기후변화 문제가 그 심각성에 비해 왜 해결에 진전이 없는지 쉽고도 간결하게 이야기한다. 소위 기든스 패러독스라고 일컬어지는데, 지구온난화의 위험은 직접 손으로 만져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 일상생활에서 거의 감지할 수 없기에, 아무리 무시무시한 위험이 다가온다 한들 우리 대부분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뿐이라는 것이다. 심리학 실험실에서 말하는 마시멜로 효과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보통 미래에 얻을 수 있는 더 큰 보상보다 지금 당장 얻을 수 있는 작은 보상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성된 시민의 자발성에만 기대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대신에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문제가 국내적이건 국제적이건 간에 언제나 정치적 관점으로 바라보아야만 실질적인 대책이 ‘실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중요한 것은 실제로 변화를 일으킬 정책과 제도와 그것을 수용하고자 하는 사회적 여론 조성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책장을 덮으며 밖을 본다. 유럽에서는 녹색당이 약진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떨까. 더운 날씨, 플라스틱 컵에 빨대를 든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SNS를 타고 플라스틱 대신 텀블러를 쓰겠다는 약속이 넘치고 있는데 실제로는 보기 어렵다. 작년 8월부터 커피숍에서 일회용기를 쓰지 못하도록 했지만 유리찻잔이 손님 숫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소비자가 원하니까 강제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법은 만들었지만 단속을 안 하기에 장식용 법처럼 보인다. 플라스틱 사용에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썼던 언론사 1층 커피숍에도 여전히 일회용만 출렁인다. 법을 만든 국회에서도 행사가 열리면 일회용품을 당연히 쓴다. 기후변화 같은 주제는 의제로 다뤄지지도 않는다. 우리는 ‘명사’의 세계에 살고 있다. 환경문제 해결은 ‘동사’로만 가능한데 말이다. 시민환경단체가 건널목이 되고 싶다.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먼지 쌓인 환경·생태 공약  (0) 2019.06.14
‘미세먼지 공론화’ 모두의 참여로  (0) 2019.06.07
말뿐인 ‘1회용품 줄이기’  (0) 2019.05.31
핵폐기물 재검토위  (0) 2019.05.24
디젤엔진을 줄여라  (0) 2019.05.17
소비문화와 이별하자  (0) 2019.05.10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