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인플레이션이 갈수록 심각해진다. 표현은 더 과격해지고 공허한 피로와 혐오가 쌓여간다. 정치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이들의 일상이 된 SNS에 오르내리는 말들을 보면, 이성이 마비된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대화 가능성을 아예 차단해 버리는 날선 표현도 문제지만, 상식을 벗어나는 개념의 사용은 더욱 이해할 수가 없다. 조금만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실질과 너무도 달라서 도무지 그렇게 표현할 수 없을 법한 말들이 난무하는 현실을 보며, 실소와 분노를 넘어 의아심이 생긴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잘 알려진 고사성어가 있다. 아무리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라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어느새 사실로 믿게 된다는 점을 비유로 경계한 말이다. 고사의 출처에 의하면, 이 간곡한 경계를 듣고 그 누구의 현혹에도 흔들리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던 왕 역시 결국은 측근들의 지속적인 말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만큼 사람은 자신에게 많이 노출되는 말의 영향에서 자유롭기가 매우 어렵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오늘날 비상식적인 말들이 확신과 증오를 품고 급속도로 전파되는 데에는, 보고 있는 것만 보게 만드는 웹서비스 구조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별생각 없이 클릭한 포스트와 동영상이 빅데이터로 저장되어 그와 비슷한 콘텐츠들을 맞춤식으로 골라서 보여주는 자동시스템이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 안에서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고 대다수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는 결국 나와 다른 생각을 지닌 이들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른바 ‘가짜뉴스’까지 불사하며 이 불신을 조장하고 이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대화, 합리적인 해명은 거부되고 그 이면에 다른 속내와 꼼수가 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음모만 영향력을 키운다. 불신이 추측을 낳고 특정한 의도를 지닌 왜곡이 개입될 때 그 폐해는 걷잡을 수 없다. 결국 신뢰의 문제다. 우리는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나름의 맥락들을 존중하지 않고서는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나의 정보와 인식이 어디에서 오는지, 누가 그것을 골라서 나에게 보여주는지 한 번 더 생각해볼 일이다. 오늘, 측근을 경계해야 할 이는 왕만이 아니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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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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