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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말도 안 돼.”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이에 해당하는 성어인 “어불성설(語不成說)”은 중국에서는 보이지 않는 우리식 한문 표현이다. 말의 내용이 이치나 상식에 맞는지를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어느 문화권이든 보편적일 것이다. 다만 말 자체가 성립되는지를 늘 따지고 그게 납득되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경향성이 이런 특정한 언어 표현에 반영되어 왔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 삶에는 말로 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심오한 깨달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이들의 일상에서도 어떤 이유가 있어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어서 말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말할 수 있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말의 논리와 맥락만 따지다가 감정을 읽지 못하는 데에서 여러 문제들이 발생한다. 감정이라고 해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뿐이다. 마음의 눈이 밝아서 말의 이면에 켜켜이 쌓여온 사연들까지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다면 말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있음을 인정하고 수시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꼭 말을 해야 아나?” 이 역시 우리가 많이 쓰는 말이다. 그러나 참으로 불완전한 우리이기에, 말을 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말을 할 수만 있으면 서로에게 자신의 마음속 사연들을 많이 말해주는 게 좋겠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여전히 말할 수 없는 것은 남을 수밖에 없다. 관계를 오래 유지할수록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더 많아지지만, 한편으로는 모르는 부분도 점차 늘어감을 깨닫게 된다. 오래된 관계일수록 잘 모르는 부분, 그래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마저 감싸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책선(責善)은 친구 사이의 도리”라는 말은 친구 사이는 절교가 가능한 관계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끊을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관계라면, 상대가 말이 안 되는 말을 한다고 따지기 이전에 내가 살피지 못하고 있는 말 바깥의 무언가는 없는지 먼저 돌아볼 일이다. 이 말이 안 되는 지점에서 다시 사랑을 떠올린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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