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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집에는 편지가 의외로 많이 실려 있다. 이황의 문집은 59권인데 그 가운데 37권이 편지이고, 송시열의 경우 259권 중 108권에 달한다. 이는 주자학의 영향력이 강해진 16세기 이후 인물들의 문집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이다. 주희의 문집 121권 중 58권이 편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황이 그 일부를 발췌하여 <주자서절요>를 편집함으로써 후대 문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 편지선집의 간행으로 조선은 본격적인 주자학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조 임금 역시 주희의 편지를 매우 좋아해 <주서백선>을 편찬하였다. 그는 수천 편의 편지 가운데 여조겸에게 보낸 짧은 편지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였다. “며칠 사이 매미 소리가 더욱 맑습니다. 들을 때마다 그대의 높은 기상을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이 편지의 전문이다. 이황이 <주자서절요>를 편집할 때 별 내용도 없는 이 편지를 왜 넣는지 의문을 제기한 제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학문과 경세를 논한 장편의 편지들보다 때로는 단 몇 마디의 짧은 편지가 마음을 울리기도 하는 법. 조선 선비들은 ‘선성익청(蟬聲益淸)’이라는 구절을 부채에 써서 선물하며 벗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표하곤 하였다.

오늘 우리에게 매미는 여름 한철 시끄럽게 울어대다가 사라지는 곤충에 불과하지만, 옛사람들은 높은 나무에 붙어서 이슬만 마시며 청결하게 사는 매미를 고결한 선비의 상징으로 여겼다. 왕이나 고관이 쓰는 관(冠)에 매미 날개 모양의 장식을 붙인 것도 이 때문이라고 전한다. 남에게 해 끼치는 일 없이 검소하게 살다가 때 되면 떠날 줄 아는 신의를 갖추었다는 의미도 더해졌다.

코로나19와 집중호우로 지친 마음 때문일까, 입추가 지나면서 유독 매미 소리가 크게 들린다. 오랜 기다림 끝에 주어진 짧은 생을 아쉬워하는 듯 텅 빈 몸으로 줄기차게도 울어댄다. 여름 한철밖에 모르는 매미를 들어 식견이 좁음을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길고 짧음, 크고 작음이 얼마나 상대적인 것인지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는 여실히 느끼고 있다.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그저 마음 통하는 벗과 주고받는 짧은 격려의 말 몇 마디가 소중한 때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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