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들은 나더러 ‘테레비빠꼼이’라 불렀다. TV편성표를 줄줄 꿸 정도였고, 그중에서도 드라마를 좋아했다. 그리고 여전히 ‘들마줌마’(드라마 보는 아줌마)로 살아간다. 요즘엔 K-TV에서 송출해주는 <전원일기>와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를 다시 보고 있다. 예전의 농촌풍경을 간접적으로나마 다시 볼 수 있는 데다 아련한 추억이기도 해서다. 한국 드라마는 한류의 중심 콘텐츠인 데다 각 방송사의 주요 수입원이다. 광고가 잘 붙기 때문이다. 인기 작가와 배우들이 출연하는 드라마는 그 자체로 수출상품이다 보니 지상파는 물론 종합편성채널까지 모두 드라마 제작에 사활을 건다. 그야말로 드라마 왕국이고 드라마 공화국이다. 

시청자는 드라마라는 상품의 소비자다. 모든 소비가 그렇듯이 이 상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누가 만들었는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드라마라는 상품도 마찬가지다. 재밌으면 그뿐. 그러다 드라마 마지막 회에 이르러서야 한 편의 드라마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쳤는지 잠시 깨닫는다. 붐마이크나 카메라를 들고 있는 현장 사진을 그때서야 볼 수 있어서다. 출연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환하게 웃으며 찍은 단체 사진이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올라오면 그때 잠시 카메라 밖에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다음 주부터 방영될 신작 드라마 예고편을 보면서 ‘신제품’에 대한 기대가 부풀고 금세 사람은 잊곤 한다.  

‘쪽대본’으로 표상되는 드라마 제작 현장의 열악함은 ‘이한빛’이라는 드라마 피디의 죽음으로 그 실상이 더욱 여실히 드러났다. 2016년 <혼술남녀>라는 드라마의 조연출이었던 이한빛 피디는 스스로 노동착취를 당하는 노동자이자 또 ‘노동착취’를 감행하는 관리자의 위치에서 스스로 견딜 수 없어 생을 내려놓았다. 그의 동생인 이한솔씨가 쓴 <가장 보통의 드라마>라는 책을 보니 드라마 제작 현장은 상상 이상으로 열악하고 악랄하기 짝이 없다. 공인된 주 52시간의 노동시간은 언감생심, 장장 일주일에 126시간. 하루에 두세 시간도 못 자고 드라마를 만든다. 폭염 속에서 일하는 야외 노동자들의 휴식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지만 야외 촬영이 많은 드라마 제작 현장만은 예외다. 안 먹으면 죽지만 드라마 안 본다고 죽을 일은 없으니 ‘그깟 드라마’로 치부하면서 말이다. 오죽하면 ‘12시간 쉬고 12시간 일하자’라는 구호가 터져나올 정도겠는가.  

하지만 드라마 현장도 엄연히 노동현장이다. 근로기준법 테두리 안에서 당연히 지켜져야 할 권리들이 ‘관행’과 ‘특수성’이라는 미명 아래 가볍게 박탈된다. 몰라서도 당하고 알면서도 당하는 현장이다. 이런 낡은 방송 제작 현실을 바꾸고 싶어 했던 이한빛 피디의 뜻을 이어받아 설립된 ‘한빛미디어노동센터’에서 요즘 드라마 제작 현장에 커피 트럭을 보내고 있다. 연예인들에게 팬들이 종종 간식트럭을 보내곤 하지만, 한빛센터에서 보내는 커피와 간식트럭은 카메라 밖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커피와 함께 미디어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동 상담과 권리 캠페인도 함께하고 있다. 비록 커피 한 잔이지만 자신들을 위해 배달된 커피는 잠을 쫓는 각성제이자 스스로의 권리를 깨닫는 각성제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현장에서 좋은 드라마가 나올 테고, 그 공익은 시청자인 우리가 함께 누리지 않겠는가.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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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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