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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잔뜩 채운 커다란 고무통에 농약병 뚜껑을 따서 들이붓고 긴 각목으로 휘젓는다. 그렇게 만든 농약 희석액을 분무기에 넣고 논밭 여기저기에 뿌린다. 경운기나 트럭 동력을 쓸 때는 릴에 감긴 긴 농약 호스가 엉키지 않게 한 명이 경운기에 올라가 줄을 잘 풀어내야 하는데 이걸 ‘농약 줄 잡기’라고 한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코를 찌르는 농약 냄새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구토가 올라오기도 한다. 나도 한때 농약 줄 좀 잡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농약 연무 속으로 속수무책 걸어가셨다. 미세먼지도 거를 수 있다는 고효율 마스크도 아닌 그저 면마스크에 우비, 장화, 고무장갑 정도가 안전장치의 전부였다. 20년 전 이야기다. 아버지도 그랬고 동네 어르신들도 농약 친 날은 두통을 비롯해 소소한 몸살에 시달리시거나 농약 중독으로 병원에 한 번씩은 실려 가곤 한다.

날씨가 뜨거워지면 풀과 벌레도 살판이 난다. 풀을 매기도 하고 ‘풀약’과 살충제도 써가면서 농사를 짓는다. 누군가 잡초가 아니라 야생초라 했던가. 하지만 농사를 짓다 보면 작물에 빨대 꽂은 ‘일진’일 뿐이다.

농약은 현대농업의 숙명이다. 제초와 살충의 엄청난 효율성으로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렸지만 그 부작용도 너무 컸다. 그 대안으로 유기농과 친환경 농업이 있다. 미지의 공포인 농약을 뿌리지 않거나 덜 뿌렸다는 이유만으로 기꺼이 지갑을 열겠다는 소비자들에게는 최종 결과물이 중요하다. 하지만 친환경 농업 전환은 그나마 농민들에게 농약을 덜 만질 수 있어서 더 중요하다. 관행 농산물이라 하더라도 소비자들은 잘 씻어서 먹을 수나 있지만 위험의 강도로 따지자면 농약 원액을 만지고 뿌리는 농민들이 가장 위험하다.

살충제 계란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양계업은 소독에서 시작해서 소독으로 끝난다. 가금학 교과서에 보면 병아리를 넣기 전부터 계사와 주변 소독과정이 8회에서 10회다. 구충과 구서(쥐잡기) 작업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고, 병아리와 닭의 질병 치료도 해야 한다. 이를 잘 관리하는 것이 양계업의 핵심이다. 계사 내부 소독은 물론 퇴비장, 집란장, 하수구 등등 꼼꼼하게 소독하라고 지침이 나와 있다. 살충제 사용 지침에서는 2~3가지를 번갈아 가면서 쓰도록 권유하고 있다. 약제 저항성, 즉 내성이 생겨서 효과적인 방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제를 실시할 때, 우의와 보호장구를 잘 갖추고 소독하라는 안전 지침이 있지만 그 안전장구가 여전히 우의 한 벌이다. 전문 방역사들이 입는 방제복은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10만원이 훌쩍 넘는다. 2000~3000원 하는 일회용 방제복도 있지만 한 번 입고 버리면 그게 다 돈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우의에 마스크 하나 쓰고 농약을 친다. 보호 장구를 잘 갖추라는 것은 권장 사안이지 의무 사안은 아니다. 아니 할 말로 보호 장구 안 갖춘다고 벌금 무는 것도 아니다. 그저 생산물에 농약이 묻었는지 안 묻었는지가 중요할 뿐. 입에 잘 붙지도 않은 낯선 외래어 ‘피프로닐’이 입에 붙기 시작한다.

사태야 어찌 되었든 누구 하나쯤은 살펴보았으면 좋겠다. 우비와 마스크라도 잘 갖추고 논밭으로 축사로 소독하러 다니고 있는지, 혹여 덥고 땀이 찬다고 중간에 벗어버린 것은 아닌지. 보안경을 농가마다 갖추고는 있는지, 질 좋은 마스크는 쟁여 두었는지. 그 마스크 재활용은 절대 하면 안 된다고 누구 하나 잔소리라도 하고 있는지 말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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