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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임의진의 시골편지

멍때리기

경향 신문 2022. 10. 6. 10:42



불멍이 대세인데, 풀멍도 있지. 마당의 풀을 보며 멍때리기. 풀꽃이 필 때쯤이면 더는 풀이 번성하지 않아. 풀깎기, 풀뽑기에서 비로소 해방된다. 가을볕을 쬐며 눈알을 끔벅끔벅하면서 풀멍. 그간 땡볕을 피해 다녔는데, 사람이 간사하지. 은은한 볕이 이젠 반갑고 좋아라. 저녁에는 달을 보면서 달멍. 한 스승이 있었는데 제자들에게 ‘달을 달로만 그저 바라보기’를 주문했다. 왜 그래야 하느냐 한 제자가 묻자, “며칠 굶은 사람은 달이 떡으로 보이게 되고, 사랑에 푹 빠진 자는 연인의 얼굴로 보이기 마련이다. 제대로 보려면 있는 그대로를 봐야 한단다.”

지인 중에 멍때리기 대회를 창시한 교주에 가까운 여동생이 있는데, 이름은 웁쓰양. 얼마 전에도 친구들과 멍때리기 대회를 했다. 멍때리기에선 무조건 웁쓰양이 킹왕짱을 먹는다. 웁쓰양은 우리에게 ‘과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시간 낭비란 말인가’ 캐묻곤 해.

“손님이 왕이다”라는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은 존 워너메이커. 그는 입만 열면 ‘4T’를 강조했는데, “생각을 많이 해라(멍때리고 있어봐라) Think, 생각을 삶으로 옮겨라 Try, 공들여서 일하라 Toil, 최후의 수단으로 신에게 의지하라 Trust in God.” 멍하니 생각조차 않고 있다보면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를지 몰라. 방면에서 일가를 이룬 분들 보면 주변에 아부꾼보다 조언하고 도와주는 근사한 벗이 많고, 고요한 호수와 같은 수도자도 한 명쯤 있고, 불멍 풀멍 ‘자연인’ 친구도 하나쯤 가지고 있다. 우두망찰 멍하니 생각에 잠긴 할매가 먼 산을 바라본다. 나도 망루에서 멍때리다가 한나절을 훌쩍 보내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그 시간이 하나 아깝지 않아.

진은영 시인의 시에 “기차바퀴가 끽끽, 마찰음으로 울었다. 멈추는 것들은 대개 그렇듯, 슬프거든” 시인의 멍때리기 끝의 후렴부. 사람은 가끔 멈추고, 슬프게 울기도 하고 또 소매로 눈물을 닦고, 개운하게 일어나 달려가고 그렇게 생애를 살아내는 존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돈줄’이 아니라, 나와 당신의 마음. 사람은 마음 가는 대로 살아야 행복해진다.

<임의진 목사·시인>

 

 

연재 | 임의진의 시골편지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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