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더위는 입이 아주 큰 곤충 같다. 전신을 꽉꽉 물어댄다. 맴, 맴, 맴 소리를 펄, 펄, 펄 눈발로 치환하면 조금은 시원할 것 같은데 선공(蟬公)들도 더위에 지쳤나 보다. 올해의 매미소리를 어디에서 처음 들을까. 귀를 뚫을 만큼의 시원한 소릿발을 기대했지만 아직은 그저 가늘고 희미하다. 벼랑 끝의 꽃 하나를 찾아 우주센터가 멀리 보이는 고흥으로 갔다. 이 고장에는 식당이나 모텔에 저 어마어마한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모퉁이를 돌아들면 작은 휴게소가 금성(金星)이다. 불시착한 기분으로 잠깐 들렀다. 최초의 우주비행사인 유리 가가린이 발사대로 가면서 했다는 동작을 떠올리며 화장실에서 자연의 부름에 따랐다.

드디어 도착한 어느 무인도. 통통거리는 낚싯배에서 따개비가 붙은 바위로 뛰어내릴 때, 그야말로 훌쩍 출세(出世)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 작은 섬은 그야말로 식물의 공화국이다. 아슬아슬한 벼랑에는 아주 희귀한 난초들이 붙어 있고, 풀은 풀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어울려 산다. 인적 하나 없기에 무덤도 없는 섬.

더웠다. 펄펄 끓는 세상에서 탈출해 나갔지만 여기는 또 여기대로의 통쾌한 더위가 도사리고 있었다. 땡볕은 올여름에만 사는 한해살이 식물 같기도 하다. 온 사방에 무성하다. 아무리 더워도 꽃은 피고 열매는 단련된다. 더울수록 더 통통한 알곡을 맺는 식물의 가르침을 따라 내 마음의 근육을 다지는 기회로 삼는다. 지금은 꽃들도 온도에 지쳐 잠깐 쉬는 형국이다. 계절이 가을꽃을 다투어 피우기 직전, 한 호흡을 고르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와중에 활짝 핀 꽃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건 모새나무였다. 이름이 조금 특이하고, 종처럼 작은 꽃들이 무슨 아우성이라도 치는 듯 다닥다닥 붙어 있다. 내륙의 고향에서 참 자주 보았던 정금나무, 산앵도나무와 비슷한 꽃. 종소리라도 듣는 듯 꽃에 얼굴을 파묻으면 은은한 향이 먼저 코로 왕창 몰려온다. 고흥의 벼랑 끝에 앉아 작지만 옴팡지게 자란 모새나무를 보며 생각해 본다. 세계의 끝이 이리도 자잘하고 예쁘고 정교하구나! 모새나무, 진달래과의 상록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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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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