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는 어떤 조건에서 일어날까요? 불만이 커지면 시위가 일어난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어떤 이론은 경제, 사회적 조건을 따져봅니다. 지배계층의 균열, 억압의 강도 등 정치역학적 조건을 연구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이들이 흔히 간과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시위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죠. 첫 번째 이론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세상에 불만 없는 사람 없지만 모든 사람이 늘 시위를 하지는 않죠. 2016~2017년 촛불집회가 절정에 달했을 때 참가자 수가 200만명 정도였습니다. 5000만명을 넘는 인구 10분의 1에도 못 미치지요. 이를 뒤집어 보면 시위는, 특히 촛불집회 같은 대형 시위는 정말 극적인, 과장을 보태면 기적적인 현상입니다. 그 바쁜 사람들이 일상을 포기하고 거리에 나섭니다. 공권력이나 상대방과의 충돌 가능성도 있죠. 게다가 나 하나 안 나가도 시위 크기는 비슷합니다. 시위의 열매 또한 내 참가와는 관계없이 따먹을 수 있죠. 그래서 이를 다 무릅쓰고 일어나는 시위는 그 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2016년, 대통령이 나라를 버린 지 오래됐음을 알게 됐습니다. 야당은 분열과 혼란을 극복하지 못한 채 헤맸죠. 그런 탓에 국민이 직접 나섰습니다. 이들이 광화문을 가득 메우고서야 국회, 법원, 정부가 움직였습니다. 이 사례는 민의의 무서움도 보여주었지만, 대의정치를 기본으로 하는 민주체제의 한계도 보여주었죠. 수백만 시민이 거리를 메워야 할 만큼 큰 한계였습니다. 2019년, 또다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지난달 28일 열린 ‘제7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에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반포대로와 인도를 가득 메웠죠.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수사가 결정적 방아쇠 역할을 했습니다. 과도한 검찰수사로 정치인을 잃은 아픔이 있는 이들은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을 겁니다.

그래서 이번 시위는 특이하다 하겠습니다. 일제와 한민족, 전두환과 학생세력, 박근혜와 시민, 이렇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가 아니니까요. 검찰은 법무부 소속 정부 기관일 뿐입니다.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받는, 대통령 한참 밑의 기관입니다. 이를 상대로 문재인 지지자들이 시위한 셈입니다. 어찌 된 걸까요. 검찰도 문재인 정부의 일부고 윤석열 검찰총장도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는데 말이죠. 물론 이번 사태가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조국 대전’이라 불리는 이 논쟁은 여러 주제가 섞여 있습니다. 검찰수사가 과도했는지, 정치적인지는 대표적 이슈입니다. 조국 장관 가족의 행태에 대한 법적, 도덕적 논의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검찰개혁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전망도 분명치 않죠. 논쟁의 열기도 대단해 소위 진보진영 안에서도 서로 얼굴을 붉힙니다.

그래도 검찰은 정부 기관일 뿐입니다. 일개 정부 기관을 다스리는데 100만명이 넘는 시민이 거리를 메워야 한다면 대통령의 정치력을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돌이켜보면 검찰과의 대립뿐 아닙니다. 정부·여당과 자유한국당 간의 대립은 몇 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지지 세력의 목소리도 잦아들지 않고 있죠. 다른 한편으로 노동계와의 관계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기대했던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사이 세상은 빨리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달 말이면 미국 하원은 트럼프 대통령 탄핵 절차를 마치리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습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하원에 소환됐죠. 탄핵이 진행될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정부 장악력도 떨어지고 다른 일에 신경쓸 겨를이 없을 겁니다. 북·미관계 개선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죠. 이렇게 되면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업적인 한반도 평화정착에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상황이 악화되면 중국의 입김은 더욱 커질 테고 미·중 대립은 격화될 겁니다. 

한국은 선택을 강요받을 테죠. 이에 대비하는 외교전략은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대일외교, 환경문제 등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죠. 장관 하나를 두고 나라 전체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이러고 있는 게 답답할 따름입니다. 모르고 있다면 그 또한 심각한 문제죠.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칼로 자르는 결단을 촉구합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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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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