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생들은 문제를 마주했던 순간에 대해 글로써 증언하곤 한다. 열 살 김지온은 이렇게 썼다. “5년 전 일이다. 침대 위에 앉아서 휴대폰에 딸린 조그마한 장식용 하트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야광 하트가 좋아서 조금씩 입 쪽으로 가져갔다. 그러다 야광 하트는 내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가고 말았다. 순간 좀비 영화에서 다른 사람은 모두 도망치는데 나 혼자 좀비 떼에 물려 뜯기는 기분이 들었다.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들이 왜 ‘아무거나 입에 넣지 마’라고 하는지 알게 되었다. 엄마한테 소리쳤다. ‘물 줘! 빨리!’”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물을 가져다 준 엄마에게 방금 일어난 돌발 상황을 털어놨을까? 김지온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만 알기로 선택한 것이다. “엄마한테 야광 하트를 삼켰다는 걸 숨긴 이유는 수술할까봐였다. 한 달 뒤에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 수술하면 아파?’ 엄마는 아프다고 했다. 1년 뒤에야 나는 사실을 엄마에게 고백했다. 5살에 삼켰고 지금은 열 살이니까 야광 하트는 5년간 내 뱃속을 돌아다녔을 것이다.”

그렇게 숨긴 자잘한 문제들이 내 유년에도 있었다. 엄마 물건을 혼자 가지고 놀다가 망가뜨려놓고는 함구한 적. 원감 선생님의 도시락 잔반 검사를 피해 몰래 토란을 남기고 감춘 적. 분명 은폐였다.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작은 위험을 감수하는 방식이자 갈등을 덮어놓는 임시방편이었다. 어째서 회피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하게 되는 걸까. 고통과 두려움을 피하려는 게 우리의 본능 중 하나이기 때문은 아닐까. 어느 연령대나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이 누적될수록 익숙한 갈등에 대해서는 면역이 생기기도 한다. 2016년에 열세 살이던 양휘모는 이렇게 썼다. “가끔 엄마에게 혼나고 혼자 있을 때면 이런 노래를 부른다. ‘어차피 화해할 인생~ 엄마는 나를 좋아하니까 밤이 되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나 자신을 위로한다.”

어떤 태평함과 담담함이 양휘모의 문장에서 느껴진다. 엄마에게 혼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는 여러 번의 반복을 통해 알고 있는 듯하다. 낮에는 싸웠던 우리지만 밤이 오면 화해하게 될 거라고. 왜냐하면 엄마는 나를 좋아하니까. 나 또한 엄마를 좋아하니까. 사랑의 확신 때문에 그는 자신을 위로하는 노래도 지어 부를 수 있다. ‘어차피 화해할 인생’이라는 가사를 쓰는 건 그가 지금의 속상함에 매몰되지 않고 앞날을 내다보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양휘모가 한 살 한 살 자라날수록 그를 무너뜨릴 수 없는 문제들이 더 많아지기를 나는 소망한다. 

하지만 아무리 자라도 한 사람이 천하무적이 되는 기적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여전히 새로운 문제로 새롭게 괴로워할 테고 새로운 만회의 방법을 배워 나갈 것이다. 열일곱 살의 나사라는 아이는 필리핀에서 한 친구와 싸웠다가 화해한 일을 회상하며 이런 글을 썼다. “나는 상철이에게 다가가서 소리쳤다. ‘야! 네가 우리 진실게임 한 거 말하고 다녔냐?’ 상철이는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더 부글부글 끓어서 ‘네가 진실게임 말하고 다녔냐고!’ 하며 상철이의 어깨를 살짝, 아니 조금 힘을 실어서 쳤다. 그러자 상철이가 ‘나 치지 말라고!’ 소리치며 내 몸을 한 바퀴 엎어치기했다. 3학년 형들이 달려와 우리 둘을 떼어 놓았다. (…) 어느 날 상철이는 나에게 다가와 선데이 마켓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마켓은 더웠고 붐볐고 복잡했고 시끄러웠다. 어지러운 혼란 속에서 나는 상철이 뒤만 졸졸 따라갔다. 걔는 많이 와본 사람답게 성큼성큼 걸었다. 좋은 망고와 좋은 수박이 뭔지 알려줬다. 우리는 과일을 한가득 샀다. 학교로 돌아와서 함께 나눠 먹었다. 무너진 장벽 위로 꽃이 피는 느낌이었다. 상철이가 선데이 마켓을 알려줬을 때 순간적으로 내 마음의 벽이 허물어졌다. 그래서 같이 가자고 했고 즐겁게 쇼핑을 하고 놀았다. 그런데 상철이의 의사는 들어보지 않았다. 상철이가 ‘콜’하긴 했지만 당황스러워서 거부를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마켓에 있는 내내 나는 즐거웠어도 상철이는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은 아주 가깝게 지내는 친구지만 그때 상철이는 나와 다른 마음일 수도 있다는 걸 잊지 않는다.”

나사는 아는 듯하다. 관계가 회복되어도 때로는 상처 부위가 아주 말끔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말이다. ‘상대방이 나와 다른 마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그의 문장 덕분에 나도 남의 마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이슬아 |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