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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 친구들 이야기로는 기자들이 다 기레기는 절대 아니라고 하면서, 또한 기자가 모두 기레기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이 함께 있다고 해요.” 지난 16일 춘천 한림대에서 열린 ‘저널리즘 신뢰위원회’ 세미나 자료에 인용된 한 젊은이의 말이다. 시민의 언론에 대한 신뢰가 바닥 수준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언론이 정작 그런 불신의 이유가 되는 시민의 평가를 인정해야 할지 말지 동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미나 발제를 맡은 언론학자 박진우는 시민이 표출하는 언론에 대한 불신도 문제이지만, 시민에 대한 언론의 불신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기자들 중에는 언론이 아무리 좋은 뉴스를 만들어 보도 해도, 편향적이고 선정적인 뉴스를 보는 데 익숙한 이용자가 좋은 뉴스를 제대로 평가해서 수용할지 알 수 없다고 지레 의심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관점에 부합하는 ‘속 시원한 뉴스’만 원하고, 선정적 뉴스에 열광하며, 그러면서도 ‘가짜 뉴스’에 속절없이 넘어가는 시민들을 믿지 못한다.

한국 언론의 신뢰성 위기는 언론과 시민 간에 서로 믿지 못하는 불신 지옥의 양상을 보인다. 나는 이 요점을 2019년 한 언론매체 콘퍼런스에서 밝힌 바 있다. 누가 누구를 믿지 못해 언론이 이 지경이 됐는지 따져 보자는 뜻이었다. 나는 주류 언론을 믿지 못해 뉴스를 떠난 비이용자 집단은 물론 뉴스를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시민으로부터도 부정적으로 평가받는 한국 언론이 염려하고 돌봐야 할 대상은 ‘시민을 믿지 못하는 언론 그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내 주장을 듣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거나 어디까지 말하나 보자는 식으로 웃고 있던 청중 속의 얼굴들이 지금도 기억난다.

언론학자 강명구와 양승목은 이미 2001년 우리 언론의 심각한 신뢰의 위기를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그때는 물론 지금까지도 위기의 원인이 되는 뉴스 이용자의 부정적 평가와 비이용자의 이탈에 주목해서 언론 개혁에 나선 경우를 찾아볼 수 없다. 자기 뉴스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보면 정파적 시민의 불만일 뿐이라고 회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른바 ‘집토끼’를 챙기기도 바쁜데 ‘산토끼’까지 챙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용자가 감소한다는 자료를 보면서도 경쟁매체가 선정적이고 오락적인 내용물로 유인해서 그렇다고 자위하고 만다. 나쁜 기사가 문제라면, 싹을 뽑듯 골라내 사법처리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시민을 믿지 못하는 언론의 기원은 뿌리가 깊다. 한때 한국 언론인들로부터만 들어볼 수 있던 격률이 있었다. 독자를 ‘중2 정도로 간주해서’ 기사를 작성하라는 조언이다. 애초에 뉴스를 명확히 하고 전달력 있게 보도하라는 취지로 만든 격률이었겠지만, 실로 이 격률은 두 가지 자세를 드러낸다. 첫째, 뉴스 이용자를 가르침의 대상으로 보는 ‘훈민적’ 자세다. 둘째, 이용자 집단의 다양한 지적 수준과 정체성은 물론 그들의 뉴스에 대한 복잡한 요구와 갈래가 있는 평가에 대해 무심한 태도다.

나는 신뢰의 위기가 이용자 평가에 무심한 언론의 자세에서 출발했다고 믿는다. 이유야 무엇이든 이제는 불신에 대처해야 하는데, 언론이 이용자의 부정적 평가를 아직도 믿지 못하고 있어 위기가 악화하고 있다. 언론의 회피를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뉴스 평가 중에는 때로 정파적 시민들이 전략적으로 표출하는 매도에 가까운 비난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신에 회피로 대응하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지금이라도 언론이 이용자의 뉴스 평가를 직시하고, 실천으로 대응하지 않는 한 악순환을 깰 수 없다. ‘저널리즘 신뢰 위원회’의 발제문 자료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대체로 생각이 복잡하고 이것저것 재고 있는 언론인이나 언론학자와 달리 오히려 명료한 인식과 자세를 보인다. 예컨대 글머리에 인용한 젊은이는 언론 불신을 놓고 동요하는 기자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알고 있으면서 왜 나아지지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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