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지인이 카톡을 보내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이 말바꾸기를 한다는 논란이 한창일 때였다. 그가 보낸 카톡의 내용은 작년 10월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이 이해찬 대표를 만났을 때 들은 얘기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이해찬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것이고 의석수도 늘어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민주당이 의석수에서 약간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오히려 다른 정당과 연정을 해서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이 대표의 입장은 오래가지 못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논의가 본격화되고, 야 3당(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적극적 태도를 보이자, 이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계속 내비쳤다. 손학규·이정미 대표의 단식을 통해 작년 12월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 간 합의문이 작성된 후에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여러 핑계를 대며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 속도를 붙이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왼쪽)가 지난해 12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하다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좌절될 경우, 부메랑을 맞는 쪽은 민주당이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높지만,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37.5%의 정당득표율로 153석을,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42.8%의 득표율로 152석을 차지했던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역구 승자독식의 선거는 보수 기득권 정당에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3가지 핑계를 대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 그러나 이 핑계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망설일 근거가 되지 못한다. 

첫째,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우리 당에 손해다’라는 핑계는 그만 대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이 배분된다. 가장 공정한 방식이다. 이런 공정한 방식을 택할 경우 자기 당의 의석이 줄어든다면, 그것은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부당하게 이익을 보던 것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불공정으로 인해 받았던 이익은 보호대상이 아니다.

또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민주당이 정치를 잘하고 국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정당으로서 역할을 한다면, 정당지지율이 올라갈 것이다. 그러면 지금보다 의석이 늘어날 수도 있다. 정치를 잘해서 지지율을 더 끌어올릴 생각을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당의 모습이 아닐까?

둘째, ‘국민들이 의석수 확대에 반대한다’는 핑계도 그만 대야 한다. 민주당이 진정성 있는 국회개혁 방안이라도 제시하고 나서, ‘그래도 국민 설득이 안된다’고 얘기한다면 모를까. 지금 민주당은 국회의원 연봉 대폭 삭감, 개인보좌진 규모 축소, 낭비 예산 삭감, 국회 예산 사용의 투명한 공개 등 국민들이 원하는 국회개혁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있다. 자기 당의 국회의원들이 허위 정책 연구용역, 허위 인쇄계약 등으로 국민 세금을 빼먹은 사례들이 드러나도 침묵하고 있다. 이렇기에 국민들이 국회를 불신하는 것이다.

만약 의석수 확대가 정말 어렵다면 지금의 300석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방안이라도 제시해야 책임있는 태도일 것이다. 실제로 지금의 300석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지역구 253석을 그대로 두더라도, 비례대표 의석 배분방식을 ‘연동형’으로 바꾸면 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 간의 불일치 현상이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최소한 정당득표율에 비해 지역구 당선자가 많은 정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받지 못하고, 정당득표율에 비해 지역구 당선자가 적은 정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더 많이 배분받을 수 있다.

셋째, ‘자유한국당 때문에 안된다’는 핑계도 그만 대야 한다. 1월 말까지는 한국당과도 합의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그래도 안된다면 국회법에 보장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절차)을 활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미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한 사례가 있고, 작년 말 유치원 3법을 패스트트랙으로 넘긴 바 있다.

지금 국회 정치개혁특위 구성을 보면, 민주당만 동의하면 한국당이 반대해도 패스트트랙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이다. 18명의 정치개혁특위 위원 중 한국당은 6명이고, 야 3당이 4명, 민주당이 8명이기 때문이다. 특위 위원 중 5분의 3이 동의하면 패스트트랙에 부칠 수 있기 때문에, 패스트트랙은 충분히 가능하다. 

‘선거법은 합의처리가 관행’이라는 핑계도 대지 말길 바란다. 헌법이 관행보다 우선이고, 헌법상으로 국회 의결은 만장일치가 아니라 재적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다. 그리고 1월 말로 정한 합의시한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패스트트랙을 활용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더라도 본회의 표결 전에 추가 협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패스트트랙 지정이 일방처리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시한은 정해놓은 협상을 하게 하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선거제도 개혁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르짖던 개혁의 핵심 중 핵심이다. 지금 그 기회가 왔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그 책임은 민주당이 질 수밖에 없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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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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