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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금은 정반대의 결과로 끝났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 당일 트럼프가 승리해 재선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되던 때가 있었다. 다른 나라 선거인데도 정치인으로서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상당한 실망과 심리적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대가 그런 것인가’ 하는 좌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처음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엘리트주의와 특권의식에 젖은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반발, 계층 간 이동이 극심하게 어려워지면서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불안이 포퓰리스트를 통해 표출된 것이 하나의 원인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이해관계의 조정과 사회통합이라는 제 역할을 못해 회초리를 맞은 그때까지의 정치를 재정비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무지막지한 편 가르기와 약자에 대한 근거 없는 적대감 부추기기, 그리고 동맹국에 대해 무례를 넘어 겁박을 일삼는 행태로 4년 동안 극도의 혼란을 겪은 후에도 다시 그를 선택하다니.

정치학자들의 눈에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분명한 신호였다. “공개적으로 기본 헌법 규범들을 멸시하는 대통령”(야스차 뭉크 <위험한 민주주의>)이란 지적부터 시작해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행태를 “진실스러움(truthiness-따져보면 진실이 아닌데 마치 진실처럼 느껴지는 것)”이란 용어로 경고(조지프 히스 <계몽주의 2.0>)하는 책들이 정치 관련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했다. 멀리 갈 것 없이 대통령이 자신의 딸과 사위를 대통령 보좌관이나 수석 고문에 임명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이런 현상은 미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페인, 그리스 등 주요 국가에서 극단주의자들이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러다보니 알게 모르게 우리 정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편 가르기를 하고 경쟁 세력을 적으로 몰아붙이고 전에 했던 말을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으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기는커녕 뻔뻔스럽고 당당하게 나오는 사람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난다. 그 선두주자 격인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누구 못지않게 성취욕구가 높은 정치인들은 은연중에 더욱 따라할 것이 분명하다. 가장 성공한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는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이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이번 선거 결과가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닌 이유다.

다행스럽게도 최종 개표 결과는 걱정했던 것과 달리 트럼프의 패배로 나타났다. 초유의 불복 사태에 대한 우려도 컸지만 뒤늦게나마 연방 총무청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의 승리를 공식 승인하고 트럼프 대통령도 정권 인수 절차에 동의함으로써 해결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내년 초로 예정된 취임식은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이고 국제사회도 새 대통령과 관계를 맺을 것이다.

물론 모든 고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절반에 가까운 미국 시민이 여전히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애초 극단주의자들이 출현하게 된 사회경제적 조건이나 배경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학자들은 “똑같이 지저분하게 싸워선 안 되고 정치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스티븐 레비츠키 등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용기를 갖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한다”(야스차 뭉크)는 등 다양한 처방을 내놓지만 구체적인 대책을 찾아내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사이 또 다른 전제주의 정치가가 나타날 수도 있고 제2의 트럼프가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희망 섞인 전망이지만, 나는 미국 대선의 결과를 시대의 조류가 변하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싶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때로 후퇴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크게 보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꾸준히 진화해왔다. 세계인의 공감을 얻은 정치체제인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의 출현으로 그토록 터무니없이 쉽게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지만 이번에 만난 장애도 종국에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의 방향은 바뀐다. 상황이 나아질 이유가 하나도 없어 보이는 절망적인 시기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전이 찾아온다. 보수·진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부의 실패를 거듭하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 정치에도 언젠가는 반가운 순풍이 불어오리라 믿는다.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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