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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박구용의 직관]인간은 죽었다?

경향 신문 2021. 3. 29. 09:45

바이러스는 정치적이다. 정치력의 크기는 각기 다르다. 정치력이 지구적이면 팬데믹이다. ‘팬데믹 바이러스’는 나타나서 사라질 때까지 정치적이다. 의료인과 과학자는 팬데믹 바이러스의 적이 아니다. 적은 공적 담론을 생산하는 시민과 정치인이다. 시민과 정치가 좋은 의견과 의지를 모아야 팬데믹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다.

팬데믹은 그리스어 Pan과 Demos의 합성어다. Pan은 고대 그리스의 신화와 종교에서 뮤즈의 음악이 흐르는 자연 야생의 신이다. 자연의 신이지만 사람과 사랑을 나눠 반신반인이다. 자연을 넘어 문명의 세계를 침범한 신, 그래서 ‘모든’이란 의미를 가진다. Demos는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시민, 특히 혈족이 아니라 지역을 대표하는 시민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정의 기반을 다진 클레이스테네스는 4부족 혈연동맹 체계인 에트노스(Ethnos)를 해체하고 10개 단위의 지역동맹 체계인 데모스를 만든다. 이 데모스 대표들이 정치의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데모스’가 지배하는 통치(kratia) 체계인 민주주의가 확장된다.

팬데믹은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이다. 팬데믹이 출현하면서 처음으로 온전한 의미에서 인간이 탄생한다. 인간의 탄생? 팬데믹 이전에도 인간이라는 말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간은 특수한 인종, 성, 신분, 계층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뿐이다. 팬데믹이 처음으로 모든 인종, 모든 성, 모든 신분, 모든 계층을 관통하는 하나의 동일한 인간 존재를 의식하도록 만든다.

팬데믹 귀환 가능성을 낮추려면
인간이 출입구를 단속해야 한다
마스크 쓰기와 거리 두기는
모두의 자유를 위한 정치 행위
인간 죽음을 막을 수 있다

“신은 죽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선언이다. 진리와 정의, 그리고 아름다움의 기준으로서 신의 지위가 박탈되었다는 선언이다. 그럼 인간은? “인간은 곧 사라질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푸코의 진단이다. 19세기 휴머니즘, 인권 의식과 함께 나타난 인간은 그의 주장처럼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 놓은 얼굴처럼 사라질 수 있을까? 푸코의 진단은 틀렸다. 제도적 규범으로 등장한 인간은 공동으로 맞서야 하는 팬데믹과 운명을 같이할 것이다. 팬데믹이 사라지기 전에는 인간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팬데믹이 진화하는 만큼 인간도 정치적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

인권의 담지자로서 인간은 실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유럽에서 교육받은 성인 백인 남성만이 인간 행세를 하고, 인간 취급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멸의 위험에 노출된 인간의 실재를 부정해선 안 된다. 팬데믹에서 벗어나는 출구는 모든 인간, 곧 인류 전체에게 열리거나 닫힌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게도 출구로 가는 특권적 열쇠는 주어지지 않는다.

백신은 출구의 문을 여는 열쇠다. 열쇠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질 때 팬데믹은 물러난다. 그러나 머지않아 다시 출몰할 것이다. 그때마다 백신에 의존하면 할수록 팬데믹은 더 빨리, 더 자주 되돌아올 것이다. 팬데믹의 귀환 가능성을 낮추고 늦추려면 백신이 아닌 인간이 출입구 문단속을 해야 한다.

팬데믹의 출입구 열쇠는 팬-데모크라시(pan-democracy), 곧 세계 민주주의다. 팬데믹은 팬 데모스만이 지배할 수 있다. 그런데 팬-데모크라시를 저해하는 요소들이 기승을 부린다. 무엇보다 북미와 서유럽 국가들 내부에서 데모스 통치 체계인 민주주의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북미, 유럽에서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있음을 감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를 대변했던 후쿠야마에 따르면 강력한 엘리트 그룹에 의한 통치 체계가 굳어지면서 불신과 불안을 조장하는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미국 공화당원 77%가 부정선거라는 프로파간다에 휘둘리고 심지어 국회의사당까지 공격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유럽인들은 마스크 착용과 거리 두기에 냉소를 보내고, 팬데믹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정부의 조처를 자유를 제약하는 어리석은 조치이자 독재라고 규정하고 곳곳에서 ‘자연(Pan)의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

마스크 거부감을 자유로운 문화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많다. 그러나 팬데믹 마스크는 문화적 자유가 아니라 정치적 자유의 문제다.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 두기는 팬데믹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한 정치적 행위다. 정부로부터 간섭받지 않을 자유, 인권으로서의 자유가 아니라 팬-데모크라시로 팬데믹을 극복하려는 주권으로서의 자유다. 나만의 자유, 우리만의 자유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자유. 이 자유만이 인간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

박구용 전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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