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자는 삶이 일상이던 시절에도 밤샘을 하는 이들은 있었다. 3000년 전 중국 정치인 주공(周公)이 밤샘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전의 성군이 행한 훌륭한 정치에 조금이라도 부합하지 않는 점이 있으면 하늘을 우러러보며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빨리 실행하고 싶어서 또 그대로 앉아 뜬눈으로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낮처럼 밝은 밤이 일상인 오늘날, 밤샘을 불사하는 이들은 적지 않다. 그런데 무엇을 위한 밤샘인가? 눈앞의 즐거움을 탐닉하며 밤을 새울 수도 있겠으나, 먼 훗날의 즐거움을 그리며 성공의 조건들을 채우기 위해 사력을 다해 밤을 새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목적이 즐거움에 있다면, 자신의 몸을 혹사해 가며 과연 얼마나 지속 가능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까? 장자(莊子)는 진정한 즐거움이란 오히려 무위(無爲)할 때만 가능하다고 하였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작은 주머니에 큰 물건을 담으려 하거나 두레박줄은 짧은데 깊은 물을 길어 올리려 하는 데에서 불행이 시작된다. 왕을 모시는 주연과 음악으로 바닷새를 대접한다면 새는 즐거워하기는커녕 괴로워하다 죽고 말 것이다. 모두에게 같은 욕망을 강요하는 교육에 즐거움이 있을 수 없다. 프랑스 문학과 영화를 즐기는 친구가 불어불문학과에 진학하고 천체 관측의 매력에 빠진 친구가 천문학과나 지구과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마땅한데, 여전히 한 줄 세우기에 급급하다. 전공별 특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입시전형이 이루어져야 중·고등학교 교육의 과목 간 차별이 줄어들고 공교육 정상화의 길도 열릴 수 있다.

주공은 불행했을까? 그가 그렇게 노심초사 이루려 한 성군의 정치는 이런 것이었다. 선한 말을 맛난 술보다 좋아하고 편견 없이 훌륭한 이를 등용하며, 약한 이들을 아픈 마음으로 바라보고 늘 새로운 마음으로 이상을 추구하며, 가까운 자를 존중하고 먼 자를 잊지 않는 일이다. 주공에게는 이를 실행하기 위한 밤샘이야말로 무위였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그의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우리의 밤샘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아니, 우리의 즐거움은 어디에 있는가.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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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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