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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후를 찾는 습관은 인류의 역사와 같이합니다. 번개가 “구름 속에서 분리 축적된 음전하와 양전하 사이 또는 구름 속의 전하와 지면에 유도되는 전하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꽃방전”임을 몰랐으니 신의 노여움으로 이해했죠. 번개뿐 아닙니다. 알 수 없는 운명에, 불안한 미래에 배후를 세우고 이야기를 채웠습니다.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었지만 마음은 편했죠. 우리 죄로 신이 노했다는 설명은 가당치도 않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습니다. 제사를 지내고, 신전을 지으며 무엇인가를 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 믿음이 커갈수록 제사장의 권력과 돈도 커갔죠. 그 배후 또한 업그레이드됐습니다. 막연했던 정령, 귀신은 구체적 인격과 스토리를 얻었죠. 번개의 신은 북유럽의 토르, 그리스의 제우스, 마야의 카위일로 등업했습니다. 그 정점은 유일신의 등장이었습니다. 그 유일신은 특정 현상, 지역을 떠나 지구 만물의 배후가 됐죠.

인식의 발달은 사람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었지만, 그 발달한 뇌로 인해 내일을 불안해하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됐습니다. 그 궁금증을 달래러 끝없이 달려왔지만, 인식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그렇기에 우리는 화성에 가는 21세기에도 배후를 찾아 마음의 안정을 찾습니다. 이런 습관은 종교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온갖 음모론이 무성한 정치판도 비슷하죠. 지난 칼럼에도 지적했지만, 미국의 큐어넌은 대표적 예입니다. 지금 미국은 커다란 위기에 처해있다, 그 배후에 민주당, 정·재계 엘리트 등이 있고 이들은 심지어 아동 성학대를 일삼는다. 어이가 없죠. 하지만 공화당 지지층 상당수가 이 음모론을 따르거나 부분적으로나마 공감합니다. 결국 지난 1월 의사당 점령사태로까지 번졌죠. 이 극단적 믿음과 행동은 주로 백인인 이들의 불안한 미래에서 기인합니다. 흔들리는 백인 지위와 경제에 불안하고 만족할 만한 설명을 찾지 못하자 배후를 찾고, 음모론을 좇게 된 것이죠.

먼 나라 이야기만도 아닙니다. 세월호 참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노동과 고용안정 문제 등 총체적 난국은 지난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로 이어졌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민중의 분노를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인식의 한계는 배후를 찾음으로써 달랬죠. “이번에야말로 배후에서 불법을 조종하고 폭력을 부추기는 세력들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처리해서 불법과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할 것”이라고 일갈했습니다. 자연히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박근혜가 물러난 지금, 박근혜 비판자들은 안녕할까요.

더불어민주당이 4·7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했습니다.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초선 의원들이 주도했습니다. 특히 패배 원인으로 ‘조국 사태’를 꼽자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은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초선 5적(敵)’이라는 낙인을 찍고 출당도 요구했죠. 이들의 전화번호를 공개하고 전화 폭탄도 독려했습니다. 한 의원은 하루에 5000통의 항의 전화·문자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배후가 누구냐 다그치고, 이낙연 대표, 이재명 지사를 꼭 집어 의심하기도 했죠. 이런 인식과 행동은 폭력성이나 졸렬함은 둘째 치더라도 인식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냈습니다. 민심이 얼마나 식었는지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증거가 나왔음에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계는 박근혜 쪽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죠.

배후를 찾아내 인식의 한계와 불안을 설명하는 버릇은 좌우가 비슷해 보입니다. 이것이 종교의 본질임을 생각해보면 좌우 모두가 정치를 종교처럼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됩니다. 종교는 항상 극단주의로 흐르고 그 끝에는 폭력이 있기 때문이죠. 정치가 종교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사라지는 민주당 초선 의원들의 목소리와 고개를 드는 박근혜 사면 요구가 신이 그린 데칼코마니인 듯합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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