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석에 앉아 노자를 배운다. 이제껏 귀동냥한 것과는 사뭇 다른 전복적 해석에 머릿속이 반짝거린다. 무유(無有)를 비롯해 부쟁, 무위는 노자가 말하는 주요한 개념들이다. 그런 총중에 경향신문의 한 인터뷰 제목에 눈길이 머물렀다. “판문점 회동 핵심은 분단이 얼마나 인위적인지 보여준 것.” 심화학습을 위해 읽은 ‘김충열 교수의 노자강의’의 머리말에 맞춤한 내용이 있다. “70, 80년대는 군사정치의 극성기로 학교는 이에 항거하는 반정시위와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군경들의 침입으로 영일이 없었다. (…) 그때 학생들이 내건 반정권 구호들에 불이병강천하와 같은 노자의 글귀들이 등장했다.”

일찍이 김구는 우리나라가 문화국이 되는 것을 소원했거니와 당시 학생들이 불이병강천하(不以兵强天下: 무력으로 천하를 강하게 하지 않는다)를 내세운 건 되새길 만한 안목이 아닐 수 없겠다. 결국 학생들은 군사정치를 물리쳤고, 그제 판문점에서의 저 만남도 결국은 부쟁(不爭)으로 가는 한 이정표가 되리라.

천하통일은 있어도 천지통일이라는 말은 없다고 했다. 천지는 진즉에 통일되어 있다. 꽃에 입문하고 북방계 식물에 대한 호기심을 이길 수가 없어 백두산 탐사에 종종 따라붙는다. 얼마 전 이도백하로 가는 길목을 둘러보는 길. 우리나라 웬만한 산 아래를 보랏빛으로 물들이는 벌깨덩굴이 ‘천지삐까리’로 피어 있다. 수형이 익숙한 나무들은 객지에서도 나의 눈을 안심케 함은 물론 인정이 묻어나던 기억 속의 고향을 떠올리게도 하였다. 꽃과 나무는 이미 스스로 천하를 통일하고 있는 중!

어느 숲으로 들어가니 발을 디디기 송구할 만큼 왕죽대아재비가 잔뜩 피어 있었다. 설악산을 위시해서 높고 깊은 산에서나 발견된다지만 아직 내 눈으로 입장하지 못했던 귀한 꽃이다. 아재비라니, 이름에서 그 어떤 인위적인 냄새를 풍기지만 이런 인위라면 얼마든지 좋다. 따지고 보면 인간인 나하고 식물인 왕죽대아재비는 물과 흙, 바람과 천둥으로 차곡차곡 연결되어 있는 것. 생김새에서 누님을 떠올리게 하는 국화처럼 이름에서 아저씨를 떠올리게 하는 왕죽대아재비.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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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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