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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시선

밸런스 패치

경향 신문 2021. 4. 19. 14:14

디지털게임의 플레이는 난이도와 숙련도의 길항에서 나온다. 게임 초반의 도전은 쉽고 간단하지만, 점점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쌓이며 그에 맞춰 게임이 제시하는 난도도 올라간다. 과도하게 어려우면 게임을 포기하게끔 만들고, 너무 쉬우면 즐거운 도전이 되지 못하기에 게임 제작자는 최적의 플레이가 나올 수 있는 난이도·숙련도의 교차점을 고민해야 한다. 이 밸런스는 온라인을 통한 멀티플레이가 게임의 중심이 되면서 조금 다른 의미가 되었다. 사람과 사람이 대결하는 멀티플레이에서는 서로의 숙련도를 대상으로 게임하기 때문이다. 각자 다른 이해와 숙련도를 가지고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의 밸런스를 조절하는 일은 컴퓨터가 제공하는 퍼즐의 난도를 올리거나 몰려나오는 적의 수를 늘리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민감한 일이다.

MMORPG에서의 직업별 성능 변경이 대표적 밸런스 패치 사례다. 검사·마법사·궁수 같은 온라인게임 캐릭터 성능이 변할 때마다 게시판이 뜨겁게 달아오르곤 한다. 특정 캐릭터에 많은 시간과 돈을 쏟아부은 게이머들이 너프(성능을 저하시키는 변경)를 맞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일으키기도 한다. 누군가의 원성을 필히 살 수밖에 없음에도 온라인게임은 밸런스 패치를 거듭하며 게임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려고 움직인다. 보다 공정하고 보편적인 룰을 통해 모든 게이머의 기대승률을 맞추려는 움직임일 수도 있고, 혹은 게임사가 자신의 이윤을 늘리려는 방향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의도를 떠나 공통적으로 두 가지를 짚을 수 있다. 밸런스 패치는 완벽한 도달점을 갖는 작업이 아니라 게임이 운영되는 내내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작업이라는 점과, 작업의 결과는 늘 누군가에게 이득임과 동시에 누군가에겐 손해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밸런스의 최적점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게임 구조 속에서 점점 닿기 어려운 목표가 되어가고 있다.

온라인게임 밸런스 패치의 이러한 점은 정치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정쟁과 암투로서의 정치가 아닌, 자원을 사회 전반에 배분하고 구성원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정치는 온라인 가상공간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밸런스 패치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최근 여러 온라인게임에서 일어난 확률형 아이템 논란과 그에 대한 게이머들의 대응은 여러모로 정치로서의 사회작용으로 읽을 수 있는 흐름을 보인다. 게임 아이템은 갈수록 현금에 좌우되며 현실의 자원과 구별할 수 없게 변해가고, 자원의 불균등한 가치 배분은 ‘트럭 사태’로 부르는 거센 항의를 맞는다. 생산자·소비자의 외피를 썼지만, 그 본질은 정치다.

온라인게임에서 벌어진 트럭 사태는 그래서 게임사와 정치권 두 집단 모두에 큰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더 많은 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합의를 이뤄내는 과정은 게임사엔 게임세계 속 정치가 갖는 중요성을 일깨우며, 정치권엔 그 게이머들이 딛고 있는 현실정치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당위를 이끌어낸다. 게이머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글쎄. 게임사를 향했던 그 트럭이 언제 국회로 향할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지난 재·보선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정쟁이 아니라, 밸런스 패치에 주목할 때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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