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고구마를 캐다가 금맥을 찾았다는 표현을 썼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고구마인 줄 알았는데 펄떡이는 심장을 캐낸 형국이다. ‘버닝썬 사건’은 가수 승리의 성접대, 약물 강간, 불법 동영상 촬영과 공유, 공권력과의 유착 의혹까지 그 추악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여성의 몸을 물건 취급하고, 성폭력 범죄를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삼는 ‘남성연대’의 심장 말이다. 권력과 부가 쥐꼬리만큼이라도 있는 자리에선 어김없이 드러나는 낡은 심장.

이 모든 게 연결돼 있다는 게 놀랍진 않다. 승리는 버닝썬에서 불법 약물을 유통하고, 이를 통해 여성을 강간하고 성접대에 이용하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이 버닝썬의 범죄행위를 눈감고 비호해준 의혹도 드러났다. 이런 일들이 승리가 벌인 사업의 영역에서 벌어졌다. 승리와 친한 연예인들의 사적인 대화방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나. 가수 정준영은 성관계를 불법촬영해 공유했고, 참여자들의 대화에선 약물에 의한 강간이 있을 가능성도 드러났다. 2016년 여자친구를 불법촬영한 혐의로 입건됐던 정준영은 ‘죄송한 척’을 한 후 경찰의 부실수사에 힘입어 무혐의로 풀려날 수 있었다.

폭행과 마약, 성범죄 등 각종 논란에 휩싸인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이 지난달 17일 영업을 중단한채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이석우 기자

이들의 일터인 방송은 어땠을까. 정준영에게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고 따뜻하게 받아줬다. 그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현재 드러난 ‘불법촬영 범죄’와 연관된 듯한 일을 언급하고, 남성 연예인들이 농담거리로 삼는 장면이 공중파를 타고 나갔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언급된 정준영의 ‘황금폰’에 있는 ‘도감’, 승리의 ‘외장하드’에 있다는 ‘야동’엔 이들의 대화방에서 오갔던 불법촬영 영상들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대중의 성의식을 왜곡시키는 데 일조했다.

TV에서 보던 익숙한 얼굴들이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 연예인의 부와 권력으로도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현행법을 조롱하고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긴 했다. 그동안 봐왔던 유사한 사건의 주인공들은 유력 재벌이나 고위 공무원쯤의 감투는 쓰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정도의 부와 명성만으로도 쉽게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 이것에 우리가 서 있는 삶의 토대이며, 남성연대로 다져진 사회구조였던 것이다.

지금 승리-정준영 사건은 필연적으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과 ‘장자연 사건’과 만나고 있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유희나 여흥으로 여기고, 공권력과의 유착으로 범죄를 무마했다는 점에서다. 때마침 ‘장자연 리스트’의 목격자 윤지오씨가 10년간 해외에서 체류해오다 최근 귀국해 공개증언에 나섰다. 장자연 사건의 공소시효를 연장하고 재수사를 촉구하는 국민청원도 60만명이 넘게 참여했다. 김학의 전 차관과 관련해서도, 부실수사를 입증하는 새로운 증언이 나오고 있다.

희망적인 것은 우리는 이제야 ‘가해자 중심’으로 사건을 보는 법을 익혀 가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피해자 리스트가 떠돌고, 동영상을 찾는 움직임도 있지만, 동시에 SNS에선 “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습니다”라는 포스터가 널리 공유됐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과거였다면 ‘남성 연예인의 일탈’ 정도로 넘어갔을 사건이 범죄로 정의되고 가해자가 중심의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그동안 디지털 성폭력을 가시화하기 위한 여성들의 노력,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시킨 ‘미투 운동’이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일이다.

수전 브라운밀러는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에서 강간이 권력과 폭력의 범죄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문화적으로 강간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남성연대’(male bonding)의 실체를 해부하고 폭로했다. 그는 “불균형을 바로잡고 우리 자신과 남성들을 강간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게 하고자 한다면, 여러 층위에서 함께해야만 하는 일은 바로 맞서 싸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한 노력으로 작은 문이 열렸다. 이제 그 문을 활짝 열어젖힐 차례다.

<이영경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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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