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 벌, 풀 초. 연약한 풀과 싸울 일이 뭐 있으랴만, 풀을 깡그리 제거한 도시에서 듣는 저 단어가 참으로 강력하다, 벌초(伐草). 매미 소리는 하늘의 그물인가. 우렁차서 구멍이 성근 듯하지만 빠뜨리는 법이 없다. 여름의 잔해를 모두 짊어지고 매미들은 지금 입적하고 있는 중! 연례행사로 벌어지는 벌초는 가을로 넘어가는 하나의 고개다. 저 고개를 넘으면서 날씨는 수굿해지고 벼는 고개를 숙인다. 이윽고 가을이 시작되고 추석이 찾아온다.

고개가 하나 더 있다. 벌초하러 시골 가는 길. 고속도로에서는 엉덩이가 특별히 발달한 자동차 꽁무니를 그저 냅다 쫓아가기에 바쁘다. 무주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단정한 국도가 시작되는 곳에 ‘라제통문’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글씨는 최근 것이로되 글자는 신라, 백제 시대로 연결되지 않겠는가. 왼편으로 구부러져 구천동을 지나 덕유산 빼재를 넘는다. 백두대간의 한 구간으로 경상의 거창과 전라의 무주를 사이좋게 잇고 있는 중! 높아서 좋고 그 말맛이 빼어나기에 더욱 좋은 고개. 빼재 이정표가 보일 때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내렸다. 구천동의 청량한 공기가 서울의 묵은 공기를 얼른 쫓아냈다. 코끝을 때리는 고향 냄새를 따라 눈앞의 풍경은 싸늘한 공간에서 비로소 다정한 장소로 바뀐다. 어머니는 아니 계셔도 당신의 친정 근처를 휘돌아들 때마다 옛이야기를 풀어놓던 음성이 바람결에 전해온다.

산소는 양지바른 곳이기에 꽃들에게 좋은 조건을 제공한다. 무릇, 닭의장풀, 달맞이꽃, 여뀌가 무덤 둘레마다 드문드문 피었다. 가장 강렬하게 핀 꽃은 꽃며느리밥풀이다. 곤궁하게 살았던 시절을 상징하듯 서글픈 꽃의 아랫입술 가운데 이빨 혹은 밥풀 같은 게 도드라진다. 그 옛날 이름도 모르고 꼴을 베어 소에게 줄 때 고명처럼 얹어 주었던 꽃일까.

이발하듯 덥수룩한 산소의 머리를 깎고 난 뒤 절을 한다. 그간 얼른 일어나기에 바빴는데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들었다. 방금 낫에 베인 풀에서 나오는 향기를 작정하고 맡아본 것이었다. 어쩌면 이 순간 확인하는 지하의 근황은 아닐까. 꽃며느리밥풀 곁이기에 더욱 좋았던 기해년의 벌초, 두 개의 고개를 넘으며 끝났다. 꽃며느리밥풀, 현삼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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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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