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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문화와 삶

벚나무 아래서

경향 신문 2021. 4. 1. 09:35

이와이 슌지가 오랜만에 신작으로 돌아왔다. <러브 레터>의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라스트 레터>. <러브 레터>가 이와이 슌지의 겨울이라면 봄은 <4월 이야기>다. 나는 이 영화를 봄이 되면 꺼내 보곤 했었다. 오프닝부터 휘날리는 벚꽃을 보며 여행이 곁에 있던 시절의 일본을 생각하곤 했다. 그 언젠가 처음 가본 요코하마의 흐드러지는 벚꽃을 떠올리곤 했다. 그 시절엔 봄마다 벚꽃을 보는 문화가 우리에게 널리 퍼지지 않았으니, 상춘객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골판지집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도 벚꽃나무 아래서 일요일의 봄을 즐기고 있었다. 계절과 자연이 주는 여유란, 낭만이란 모든 이에게 공평하다 생각했다. 항구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야무졌다. 하얀 꽃잎은 별처럼 흩날렸다. 짧은 며칠 동안의 일정을 취소하고 나도 그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한참을 벚꽃과 상춘객의 풍경화를 즐겼던 기억으로 <4월 이야기>의 오프닝을 즐겼다. 사람과 풍경이 어우러지는 여행의 모습이었다.

처음 일본에 갔을 때도 생각난다. 첫 해외여행이었으니 모든 게 신기하고 설렜다. 여정의 처음, 친구의 안내로 도쿄 에비수로 향했다. 21세기라는 단어가 아직 친숙하지 않았을 때이니, 일본에 대한 판타지적 선입견도 있었다. 이를 감수하고라도 에비수의 모습은 당시 한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붉은 벽돌의 향연이었다. 건물도, 거리도 19세기 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붉은 벽돌로 뒤덮여 있었다. 도쿄의 탑골공원이었을까. 평일 해 질 녘의 벤치에는 주로 노인들이 앉아 있었다. 한 노인 커플이 눈에 띄었다.

50년 이상 매일 아침 넥타이를 만졌을 것 같은 신사의 어깨에 메이지 시대의 여학교에서 받은 생활교육을 평생 지켜왔을 것 같은 숙녀가 기대어 있었다. 그 모습은 뭐라 말할 수 없이 단아했다. 기품이 있었다. 아마도 서로 사별한 후 뒤늦게 황혼의 사랑을 싹틔우는 커플일 수도 있지만, 평생 아침마다 같은 천장을 보고 일어났어도 금슬에 한 오라기의 터럭도 앉지 않은 부부라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언제부터인지 잘 늙는 게 꿈이었다. 꼰대가 되지 않는 거였다. 지혜와 사려를 갖추지는 못하더라도, 고민과 상식은 계속 쌓아가고 싶었다. 언젠가는 관조와 성찰로 진화하기를 바랐다. 한참의 세월이 지난 후, 면도하다가 문득 거울을 봤을 때 ‘그래도 추하게 늙지는 않았구나’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떠올리곤 했다. 30대 초반의 어느 날이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의 다짐을 얼마나 잘 실현하고 있는지 생각해봤다. 회사 근처 벚꽃길을 걸으며 어느덧 아득하지만 그래도 생생한 요코하마와 도쿄에서의 소회를 지금과 비교해봤다. 요코하마 못지않은 벚꽃 군락을 한국에서도 만나게 됐지만, 인파를 피곤해하는 나이가 됐다. 아득한 미래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기도 했던 결혼 생활도 몇년째 하고 있다. 철없이 살았던 탓에, 또래 친구들이 진작에 겪었을 일들을 뒤늦게 받아 안으며 당혹과 무력감의 무게를 느끼기도 한다. 에비수의 노년 커플도 이런 일들을 거치며 탄탄한 황혼을 맞이할 수 있었으리라.

그때에 비하면 이미 늙었다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꿈은 잘 늙는 것이다. 다만 그때는 알지 못했던 일들이 늘어났다. 살면서 조우하는 이런저런 시련에 먹히지 않고, 끝끝내 자신을 지켜나가는 것의 어려움. 공과 사의 경계에서 줄타는 법. 숫자와 시간 간의 싸움에서 휩쓸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사회생활의 경험이 미천했을 때는, 미처 짐작할 수 없었던 세계다. 그때와 지금 사이의 시간이 다시 한번 흐르면, 지금보다 훨씬 입을 덜 열고 작은 것들 앞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의 세상도 계속 혼란할 테지만, 그저 때 되면 피고 흩날리며 지는 벚꽃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아나가고 싶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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