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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선봉을 걷고 바라보니, 여전한 청산에 저 푸르른 나무, 나무들.” 배에서 밤을 보낸 아침이다. 비바람을 막기 위해 덮어 놓은 선봉(船蓬)을 말아 올리니 강가의 산과 나무가 보이더라는 내용이다. 읽기만 하면 가슴이 뛰고 손발이 춤을 추게 된다고 할 정도로 수많은 이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아온 구절이다. 얼핏 범상해 보이는 시어 어디에서 그런 감동을 느낀 것일까?

위 구절은 남송의 학자 주희(朱熹)가 지은 짤막한 절구 작품의 후반부이다. 전반부를 포함한 내용 전개는 이러하다. 자그마한 배를 타고 강을 따라 흐르는데 후드득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선봉 아래로 비를 피해 들어갔지만 밤새도록 몰아치는 격한 풍랑에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설핏 스며드는 아침 햇살에 손을 뻗쳐 바깥을 내다보니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처럼 거세던 풍랑은 온데간데없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한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산과 나무는 언제든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저 그런 풍경이 문득 감동으로 와 닿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 덕분이다. 주희는 이 시를 짓던 당시 비방을 당하고 파직되어 중앙 정계를 떠나온 상황이었다. 저서 간행 등 학술활동까지 금지되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풍랑에 일렁이는 강물만 보이는 가운데 가녀린 조각배에 몸을 싣고 있다. 하지만 변화의 기미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던 암울한 상황에도 아침은 변함없이 왔고,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인 산과 나무가 그전과는 다른 의미로 발견된다.

모두가 이미 지쳐가고 있는데 코로나19의 확산은 수그러들 줄 모른다. 이 추세라면 몇 주 뒤에 1일 확진자가 400명에 육박하리라는 우울한 전망마저 나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있는 느낌이다. 우리 앞에 놓인 문제가 온 강을 가득 채운 풍랑처럼 어마어마하게 커져서 다른 것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상황은 결국 변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그 와중에도 변치 않은 무언가를 발견하며 말할 것이다. “아 그래, 너는 늘 거기 있었지. 내 눈이 잠시 보지 못했을 뿐.” 우리 모두의 건투를 빈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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