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국내 개봉된 영화 <커런트 워>(전류전쟁)에서 토머스 에디슨을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말한다. “전류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는 거야.” 전기의 등장으로 백열전구와 공장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이로 인해 인류의 삶이 통째로 바뀌고 산업 생산성이 폭증할 걸 내다본 걸까. 요즘엔 전기자동차가 내연기관을 위협하는 지경이니 대단한 미래예측이다.

영화는 19세기 후반의 전기 도입 시기에 토머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라는 두 명의 걸출한 천재가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노력형 에디슨은 직류를 밀었고, 천재 테슬라는 교류를 주장했다. 요즘 건전지에 사용되는 직류는 전압을 올리고 내리기 힘든 속성 때문에 가정에서 사용하는 낮은 전압으로 송전해야 했다. 전압이 낮으면 멀리 못 가고 발전소를 곳곳에 분산 배치해야 하니 공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테슬라의 교류 방식은 변압이 쉽다. 교류를 초고압으로 멀리 송전하고 동네 근처에서 전압을 내려서 배전하면 발전소는 드문드문 있어도 된다. 결국 테슬라를 밀었던 웨스팅하우스가 승리했다.

전기가 본격적으로 인류 삶에 영향을 주기까지 왜 그리 오랜 세월이 필요했을까. 자석을 움직이면 전기가 생긴다는 발전의 원리를 19세기 전에는 몰랐기 때문이다. 이 위대한 발견으로 발전이 가능해졌고, ‘커런트 워’로 이어졌다. 영화는 직류와 교류를 두고 발명자와 거대 자본이 뒤섞여 벌어지는 음모와 대립을 보여준다. 승자인 테슬라는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잊혀지지만, 패자인 에디슨은 위대한 발명가의 명성을 남겼으니 그래도 나은 형편이었다.

100년이 훌쩍 넘어서 테슬라라는 이름이 대중에게 다시 등장한 것은 일론 머스크가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를 창업하면서였다. 머스크는 다가올 미래를 미리 보는 듯한 통찰력으로 사람들을 열광시킨다. 마치 컬트의 느낌이랄까. 20세기 말까지도 내연기관 자동차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전기자동차가 살아생전에 출현하기는 힘들어 보였으니 정말 외계인 같은 사람이긴 하다. 역설적으로 머스크는 니콜라 테슬라의 교류가 아닌 토머스 에디슨의 직류를 중심으로 사업을 한다. 전기자동차뿐만 아니라 그가 만든 또 다른 사업체인 태양광 업체도 직류 발전 및 저장을 하니까. 직류 변압 기술의 발전으로 최근엔 고압 직류 송전도 확대되는 추세다.

전기와 자기의 상호 작용을 4개의 수학 방정식으로 완벽하게 기술해낸 사람은 19세기 중반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제임스 맥스웰이다. 아름답고 대칭적인 방식으로 전기와 자기가 동전의 양면처럼 상호 연관돼 있음을 표현한 맥스웰의 수학적 체계화는 결국 2차 산업혁명을 촉발했다. 자기장이 변하면 전기장이 생긴다는 방정식에서 발전기가 발명됐고, 전기장이 변하면 자기장이 생긴다는 방정식에서 모터가 발명됐다.

인류가 전기와 자기를 다룰 줄 알기까지는 난산의 과정이 있었다. 먼저 전기와 자기가 바뀌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필요했다. 이게 해결되지 않고는 발전소도 전기자동차도 출현할 수 없었다. 고대 그리스와 중세 유럽에는 무엇인가가 변화하면서 새로운 것이 출현한다는 발상을 표현하는 언어가 없었다. 2000년 동안 유럽 사유 체계의 핵심이었던 유클리드 기하는 철저하게 정적이다. 움직이지 않는 점과 선을 다룬다. ‘변화하는 무엇’을 다루는 언어가 아니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움직이지 않는 삼각형을 다루지 않는가.

결국 17세기에 아이작 뉴턴이라는 전무후무한 수준의 천재가 나타나 천체의 운동을 다루는 언어를 창안했다. ‘변화를 다루는 언어’, 미적분이 탄생한 것이다. 정적 세계관을 넘어 동적 세계관의 출현이다. 19세기 전자기학은 미적분을 사용해서 전기장의 변화와 자기장의 변화를 표현해냈고, 인류는 전기를 사용하는 새로운 시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전기는 이제 21세기 새로운 모빌리티의 중심이 되면서 또 다른 혁신의 중심에 서 있다.

<박형주 아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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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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