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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여러 지자체 중에서도 지난 10년간 사회적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이번 보궐선거로 시장이 바뀌면서 서울시 사회적 경제의 방향이 기로에 서게 되었다. 일부 야당 후보들은 기존의 서울시 사회적 경제 부양정책에 대해 거의 대부분을 폐지하거나 축소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렇게 되자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특히 관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활동해 오던 이들 중 일부가 그 반대쪽 후보를 지지하는 쪽으로 몰려가고 있다. 사회적 경제와 각급 정부, 이른바 ‘관’과의 관계는 항상 미묘하고 어려운 쟁점이었다. 사회적 경제는 원칙적으로 각급 정부와 긴밀히 협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며, 유무형의 자원을 지원받는 것도 전혀 그릇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독자적 정체성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사회적 경제는 사회연대경제, 즉 ‘우리의 좋은 삶엔 절실히 필요하지만 국가·공공 부문도, 시장경제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개인적·사회적 필요를 사람들의 연대를 통해 조달하는 활동과 조직으로 구성되는 영역’이라고 정의하곤 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도전에 처한 21세기 산업사회에서 국가·공공 부문은 의회의 승인과 예산 제약, 영리 부문은 상품성과 수익성이라는 자기 논리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래서 사회적 안정, 정의, 혁신, 생태전환 등 분야에서 이러한 사람들의 도덕적·사회적 각성에 따라 사회적 가치를 발견하고 그를 충족하기 위해 자발적 연대로 행동을 조직하는 사회적 경제의 정체성은 분명한 독자성을 갖고 있으며, 이제 각종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그밖의 다양한 사회적 연대체의 경제 활동은 사회의 전환과 혁신에 필수적인 존재로 자리잡게 되었다. 태양광 설치를 비롯한 에너지 전환에 있어서 기존의 영리적 인센티브 방법보다 주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커먼스’ 협동조합 방법이 사회적 정의에 있어서나, 속도 및 효율성에 있어서나 월등하다는 사례가 누적되고 있다. 여러 가지 돌봄 행정에 있어서 ‘커뮤니티 케어’가 실현되기 위해선 마을기업이나 협동조합 등 다양한 사회적 경제 조직과 결합될 필요가 있음도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서로의 교집합이 많다고 해서 사회적 경제가 본령의 정체성과 독자성을 애매하게 하는 순간, ‘싼값으로 공공 서비스를 때워주는’ 국가·공공 부문의 보조장치로 전락하거나 정권을 잡은 정치세력이 지지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원을 배분하는 정실주의 온상으로 비난을 살 위험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런 것이 사회적 경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색안경을 만들어내게 된다. 사회적 경제 협업·지원 정책을 대폭 축소·폐지하겠다고 하는 일부 후보들은 바로 이러한 삐뚤어진 정치적 색안경을 끼고 사회적 경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요컨대 ‘특정 정치세력의 외곽 조직 혹은 지지표 동원 영역이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단언컨대 지금 전 세계 모든 나라와 지역에서 생태 위기와 각종 사회적 위기에 대처할 수 있도록 산업사회를 전환하는 데에 사회적 경제의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부인하는 곳은 없다. 각 후보의 이념과 정책 방향에 맞게 기존에 서울시에서 자라난 풍부한 사회적 경제의 조직 자원이 어떻게 교집합을 찾아 공동선을 이룰 것인가로 생각을 전환해야만 한다.

그 반작용으로 특정 후보의 지지운동에 몰두하는 일부 사회적 경제 활동가들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제해야 한다. 그러한 교집합을 찾는 과정에서 특정 정치세력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데까지 나가는 것은 분명히 선을 넘는 일이다. 사회적 경제가 아래로부터 시민들의 자발적 연대에 기초하여 그 지역과 부문에서의 기초를 충실히 마련해왔다면, 무수히 벌어질 각급 선거에 휘말릴 이유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기존 10년의 성과가 무너질 것’이라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없다. 그 ‘10년의 성과’라는 것이 시장 한 사람 바뀌었다고 해서 무위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과연 지금까지 사회적 경제에 적합한 원칙과 방식에 입각하여 그 본령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방식으로 활동을 펼쳐왔는지에 대해 원점으로 돌아가서 성찰과 검토를 행하는 것이 옳다. 지금처럼 특정 정치세력과의 그야말로 ‘정치적인’ 결합을 강화시키는 쪽으로의 행동은 오히려 지금 절실한 사회적 경제의 정체성과 독자성 확립을 해치는 해로운 효과를 낳게 될 것이다.

선거와 정치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 밖에서도 인간과 자연의 삶은 이루어지며, 여기가 사회적 경제의 발판이 된다. 선거 바람이 거센 지금은, 사회적 경제의 본래 모습과 가치를 알아주는 정치인들과 그것을 지켜내는 활동가들이 어느 때보다도 소중한 시점이다.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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