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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동영상을 소개한다. 2분30초짜리다. 제목은 ‘살라 2032(Salla 2032)’다. 한 남성이 선크림을 바른 뒤 얼어붙은 폭포에서 스노보드를 탄다. 아이스크림을 손에 든 다른 남성은 차가운 호수 속으로 들어간다. 두 여성은 눈발이 날리는 속에서 배구를 한다…. 살라는 북위 66도가 넘는 북극권 핀란드에 있는 마을이다. 인구는 3000여명에 불과하다. 자칭 세계에서 가장 추운 마을답게 연평균 기온은 영하 0.4도다. 그런 살라가 2032년 하계올림픽 유치 신청을 하려 한단다. 북극권에서 하계올림픽이라니. 말도 안 된다. 살라가 하계올림픽을 신청하려는 목적은 다른 데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다. 지금 추세라면 11년 뒤 살라에서 눈과 얼음을 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살라를 살리는 일이 지구를 살리는 일이라고 풍자적으로나마 호소하는 것이다.

기후변화 위기를 풍자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에 처한 몰디브는 2009년 10월 바닷속에서 각료회의를 했다. 2019년 9월 스위스에서는 빙하 장례식을 열었다. 자신들이 처한 기후위기를 풍자해야만 하는 현실이 야속하지만 오죽할까 싶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누가 이들의 절박함을 알아줄까. 안타깝게도 이들의 호소는 씨알도 안 먹힌다. 세계적인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8)를 대하는 세계 정상들의 태도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툰베리는 2019년 9월 유엔기후행동정상회의장에서 각국 지도자들 앞에 섰다. “당신들은 공허한 말로 나의 꿈과 유년을 앗아갔다. … 우리는 대량멸종에 직면해 있으며, 당신들은 늘 돈과 영원한 경제성장이라는 거짓말만 하고 있다. 감히 어떻게 그럴 수 있냐. … 미래세대가 지켜보고 있다. 당신들이 우리를 저버린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연설은 짧지만 강렬했다. 그러나 정상들의 반응은 기가 찼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기후변화 논쟁을 “아이들의 쓸데없는 걱정”으로 치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누군가가 툰베리를 이용한다고 의심했다. 툰베리에게 레이저 눈빛 공격을 당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미래가 촉망되는 아주 즐거운 여자아이처럼 보인다. 만나서 반가워”라는 비아냥조의 트윗을 날렸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버릇없는 아이”라고 비꼬았다. 과연 이것이 기후변화 활동가에게 정치 지도자들이 할 말인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다를까. 그가 주목할 만한 조치들을 내놓으며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취임 전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이끌어낸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을 기후특사에 임명한 그는 취임 당일 트럼프가 탈퇴한 파리협약에 복귀했다. 취임 일주일 뒤에는 기후변화 대응 관련 다수의 조치들을 내놨다. 4월22일 ‘지구의 날’ 기후정상회의 개최도 약속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을 막으려는 시도도 있다. 이달 초 폭스뉴스는 케리가 2019년 상을 받으러 자가용 제트기를 타고 아이슬란드로 간 사실을 보도했다. 의도는 뻔하다. 자가용 제트기의 1인당 탄소배출량이 상업용 비행기보다 40배나 많다는 점을 부각시켜 그의 자격에 흠집을 내려 함이다.

기후변화가 뉴욕타임스 1면 머리기사에 처음 등장한 지 올해로 33년이 됐다. 그동안 성과도 많았다. 1992년 리우에서는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기본협약(UNFCCC)이 채택됐다. 1997년 교토의정서에 이어 파리협약까지 체결됐다. 인식도 바뀌었다. 지난달 말 공개된 사상 최대의 기후변화 여론조사(50개국 120만명 대상)를 보면 3분의 2가 기후변화를 글로벌 비상사태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대처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파리협약에 따라 각국은 5년마다 진전된 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제시해야 하지만 한국을 비롯해 많은 국가들이 위배했다. 케리 특사는 지난달 말 CNN과 인터뷰하면서 “파리협약의 지구온도 상승 1.5도 제한은 타당한 목표이지만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이를 달성하는 데 불충분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툰베리도 지난달 말 세계경제포럼(WEF) 화상 연설에서 “한밤중에 집에 불이 났는데도 10년, 20년, 30년 기다릴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살라에서 하계올림픽이 열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있어서도 안 된다. 기후변화가 실재하는 위기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새겨들어야 한다. ‘살라 2032’ 동영상은 풍자일지라도 이들의 경고는 결코 풍자가 아니다. 설연휴 동영상으로 그 경고의 무게를 확인해보기를 권한다.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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