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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뇌처럼 복잡한 회로의 북한산. 선잠을 깨고 나와 지하에서 출발했다. 연신내역-불광사-족두리봉 옆길로 오른다. 번들거리고 번잡한 도심에서 30여분 만에 이런 풍광과 시야를 얻다니, 과연! 이윽고 향로봉 아래 고개에 이르렀다. 차마고도를 연상케 하는 돌고개가 꼬부라져 돌아가고 그 날망 끝에 인왕산 아래 동네가 잘록하게 걸린다. 꼭 10년 전에 바로 이 자리를 다녀간 뒤 이런 일기를 썼다. “등산객이 빠져나간 만큼 일요일의 시내는 조용하다. 한반도 중앙 고원에 건설된 문명의 도시, 서울. 저녁밥 짓는가. 푸르스름하게 가득 찬 기운. 승가사 계곡 물소리 찰방찰방 귀에 담아 구기동으로 내려왔다.” 

같은 요일, 같은 자리에서 그 풍경을 본다. 침침한 눈 사이로 산은 여여하고, 거리도 여전하다. 몇 가지의 변화는 있다. 그동안 문득문득 들이닥친 생각들이 내 두개골에 주입되어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나이 마흔부터 항상 보따리 쌀 준비를 해야 한다. 오십에는 자연과 접촉면적을 넓히는 게 장땡이다. 육십부터 지붕 아래를 지옥으로 여겨라. 

그때와 같은 품목의 김밥에 물, 과일과 빵을 우물거리며 천하의 한 귀퉁이를 바라보았다. 하늘에 무슨 난투극이라도 있었는가. 얼룩덜룩 멍이 들었다. 곧 한줄금 퍼부을 기세다. 오늘도 식물 관찰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담을 만한 게 없다. 공중으로 가는 시선을 아래로 구부렸다. 나무보다는 바닥의 돌을 자꾸 보는 건 발과 접촉하는 곳의 사정이 새삼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얼굴을 비비고 싶을 만큼 기묘한 표정의 돌들. 마을버스 속에서 판문점발 속보를 찰랑찰랑 귀에 담으며 탕춘대-포방터시장-홍제역으로 내려왔다. 과연! 나로서는 한 가지가 남았다. 오늘 벌어진 일들 속에서 그래도 꽃 하나를 소환하는 일이다. 북한산 초입, 태극기가 펄럭이는 바위 너머에서 꽃 한 송이를 보았더랬다. 아주 가늘고 너무 여린 병아리난초였다. 아무 데서고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야생화. 나의 머릿속을 양초처럼 순간 환하게 밝힌 병아리난초. 너를 만났기에 마음 놓고 돌을 보았단다. 오전에 너를 활짝 보았기에 오후에 이렇게 확 좋은 뉴스를 듣는구나. 병아리난초,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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