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가 살기 좋은 선진국이라고 해서 이민을 왔다. 막상 살아보니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밥벌이의 어려움이나 언어장벽 같은 것이야 미리 예상하고 왔던 터라 새삼 불편해할 바는 아니었다. 통상적인 낯섦과는 별개로 일상생활을 하는 곳곳에 불편한 것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불편함에 익숙해지는 것이 캐나다 사람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적응하기 쉽지 않았던 일 중 하나가 자동차 운전. 서울 같은 복잡한 도시에서 13년 무사고 운전을 했으니 운전에는 웬만큼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토론토에는 넓은 길, 좁은 길 가리지 않고 암초가 널려 있었다. ‘멈춤(STOP)’ 표지판이야 눈에라도 잘 띄니 적응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문제는 학교 주변에 있는 갖가지 표지판들. 신호등 위나 진입로 모서리에 작게 붙어 있는 표지판들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제한속도 40㎞’ 또는 ‘아침저녁 진입금지’ 위반 딱지를 한두 번 떼고 나니까 표지판들이 크고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학교 주변이 아닌 다른 어느 곳에서도 스쿨버스가 멈춤 표지판을 올리고 서 있으면 양쪽 차로 차량은 얼어붙은 듯이 정지해야 한다. 무심코 그냥 지나쳤다가는 신호나 속도위반의 몇 배에 해당하는 범칙금과 벌점을 물어야 한다. 재판을 걸고 잘못했다고 아무리 빌어도 이것만은 절대 깎아주지 않는다.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토론토에서도 대란이 벌어진다. 교통대란이 아니라 ‘학부모 대란’이다. 교육청에서 길 미끄러워 위험하다고 스쿨버스 운행을 전면 금지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 돌봐줄 사람을 찾거나 휴가를 내야 한다. 그 여파는 토론토 전체로 퍼져나간다.

비단 아이들과 관련한 문제만이 아니다. 안전에 관한 것이라면 내 일상생활이나 스케줄을 엉망으로 만들어도 문제를 제기하기가 어렵다. 아니, 이곳 사람들은 문제를 제기하기는커녕 당연히 감내해야 할 일로 여긴다. 토론토의 어느 지하철역에서 인명 사고가 발생하면 토론토 지하철이 모두 멈춰 선다. 안내 방송이 나온 이후 승객들은 지하철 안에서 기다리든 바깥으로 나가 버스를 타든 각자 알아서 자기 길을 선택한다. 혼잣말로 투덜댈 수는 있겠으나 어디에 항의하거나 하소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공항도 사정은 마찬가지. 몇 년 전 뉴욕 출장을 한 달에 한 번씩 간 적이 있었다. 뉴욕행 비행기가 제 시간에 뜨는 적이 거의 없었고 심지어 다음날 오라고 한 경우도 있었다. 안내 방송은 길지도 않았다. “보안상의 이유.” 항공사 직원에게 문의는 해도 불만을 털어놓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고층빌딩을 새로 짓거나 보수를 하면 그 주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몇 년 동안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에서라면 몇 개월 만에 뚝딱 끝낼 법한 일인데, 몇 년을 질질 끄는 듯이 보인다. 느려서 답답하기는 해도 안전수칙을 철저하게 지켜가며 공사를 하니까 사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들은 불편해도 참는다. 아니, 불편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른바 선진국 시민들이 세상을 편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는데, 선진국 소리 듣는 곳에 직접 와서 살아보니 이렇게 불편을 감수해야 할 일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재미나는 것은 이런 불편함은 금세 익숙해진다는 사실. 불편함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 세상 편하게 사는 방법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선진국에서 선진 시민으로 살아가자면 이런 대가 혹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이 안전하게 안심하고 살 수가 있다.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하는 바람에 수능시험이 연기되어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불편해도 참으시라. 이런 불편함이 생겨난다는 것은 한국이 선진국 되어 간다는 방증이다. 이런 불편함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 줄 안다면 당신은 이미 선진 시민이다.

<성우제 | 재캐나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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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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