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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대 박힌 그 코는/ 내 딸의 코였어./ 빨대가 막아버린 그 숨은/ 내 딸의 숨이었어./ 한순간 멋과 편리를 위해 잠깐 쓰고 버린 것들이/ 내 딸의 숨을 막고/ 내 딸의 삶을 후벼판 거지.”(‘무제’)

시를 본 순간 숨이 잠깐 멎는 듯했다. 세월호 유가족 유경근씨가 쓴 시다. 코에 빨대가 꽂힌 거북이의 모습에서 딸을 떠올린 유경근씨의 고통이 어떤 것일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또 그가 ‘그 사건’ 이전과 이후에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바다에 수장된 딸과, 바다거북이가 겪는 고통이 그에겐 분리되지 않았다. 거기엔 뛰어난 시적 상상력이나 은유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떠올랐을 것이다. 국가와 사회 시스템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이 목숨을 잃은 딸과 인간이 생각 없이 버린 쓰레기로 목숨을 잃고 다치는 동물이 그에겐 하나로 연결됐다. 

6월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법적 사용 금지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참가자가 바다거북이 탈을 쓰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유경근씨는 생명다양성재단·시셰퍼드코리아 등 환경단체에서 기획한 ‘쓰레기와 동물과 시’(쓰동시) 프로젝트에 참여해 이 시를 썼다. 동물에게 피해를 주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다. 지난해 ‘재활용 쓰레기 대란’은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저절로 사라지지 않고 언제든 눈앞에 귀환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몇몇 대책이 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쓰레기는 불편한 형태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의성에 쌓인 거대한 ‘쓰레기 산’과 같은 모습으로, 플라스틱 조각을 아기새에게 먹이로 주는 앨버트로스의 모습으로.

빨대가 코에 박힌 거북이, 앨버트로스의 입에서 나온 플라스틱의 이미지는 충격적이지만, 너무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나와 연결된 일로 느끼긴 어려웠다. 하지만 최근 조사 결과는 내가 버린 쓰레기가 이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명다양성재단과 영국 케임브리지대가 공동 조사한 보고서엔 한국에서 배출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매년 바닷새 5000마리, 바다포유류 500마리를 죽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까 그동안은 눈감고 있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증거’가 생긴 셈이다. 내가 버린 플라스틱은 바다를 건너 굶주린 앨버트로스나 거북의 먹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생명을 죽이고 내장에 남아 썩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이 가볍고 편한 플라스틱이 지닌 불멸성이다. 

최근 김한민의 <아무튼, 비건>에서 ‘연결’이란 말을 새롭게 접했다. 그에 따르면 ‘연결감’은 나와 남을 구분하고 배제하는 타자화와 대척점에 있는 개념으로, 동물은 “가장 타자화된 타자, 남 중의 남”이다. 그는 지난해 ‘동물 축제 반대 축제’를 기획한 데 이어 ‘쓰동시’에 함께하며 바다 생물을 죽이는 쓰레기에 대해 말한다. 그는 “비건(채식주의자)이 되는 것은 산업과 국가와 영혼 없는 전문가들이 단절시킨 풍부한 관계성을 회복하는 사회운동”이라고 말한다. 

유경근씨의 시가 찌르는 듯한 고통으로 와닿은 것 또한 ‘연결감’ 때문이다. 바다 생물의 고통이 부모 잃은 자식의 고통이란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로 전환되어 전달됨으로써 ‘타자’였던 거북이의 고통이 내게 와닿았다. 세월호 참사를 초래한 무능력한 국가·사회 시스템의 폭력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무관심과 남용이 다른 생명에겐 폭력이 될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육식의 성정치>에선 고기 뒤에 가려진 진짜 동물의 모습을 ‘부재 지시 대상’이라고 부른다. 삼겹살이란 명칭은 살아 움직이는 독립된 생명체로서의 돼지를 망각하게 만들고 공장식 축산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을 가려버린다. ‘가려진 대상’을 인식하는 데는 대단한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다. 공장식 축산의 실상, 플라스틱 쓰레기의 폐해에 대한 정보는 넘쳐난다. 그저 눈감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잠시만이라도 모든 걸 내려놓고 내가 먹고 쓰고 버리는 행위가 세계와 다른 생명에 끼치는 영향을 직시하는 것이다. 제대로 본다면, 이전과 이후는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이영경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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