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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와 함께 생활한 지 반년이 넘어가자 인간관계 양상이 바뀌게 되었다. 이제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마스크를 쓰고 만나는 사람과, 마스크 없이 만나는 사람. 집 밖에선 늘 마스크를 쓰니 마스크 없이 만나는 사람은 집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다. 마스크 없이 사람을 만나면 껍데기를 벗고 만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예전보다 한결 가깝게 느끼고 마치 그 사람이 확장된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스크 쓰고 만나는 사람이 더 멀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예전에는 타인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거리를 걸어 다녔지만 이제는 지나다니는 사람 한 명 한 명을 모두 의식한다. 비록 마스크에 의해 분리되어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사람 한 명 한 명이 더욱 가깝고 연결된 것처럼 느껴진다. <면역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율라 비스는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이제는 잘 이해할 수 있다. 예전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주로 가족들만 ‘우리’에 해당했다. 이제 ‘우리’는 넓게 확장되어 지하철 옆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 알게 모르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이들,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우리가 되었다.

코로나는 거기에 더해 ‘우리’의 범위가 인간을 넘어선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우리는 코로나가 야생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인간의 탐욕이 야생의 숲까지 차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야생이 인간의 영역으로 넘어온 것이다. 코로나는 환경 문제이고 기후 위기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다”라고 말할 때 그 ‘우리’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자연이기도 하다. 서로의 환경이라는 말은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상대방도 내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사실을 값비싸게 배우고 있다.

어려운 소식이 많이 들려오는 와중에도 낙관할 수 있는 까닭은 ‘우리’가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막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 선택과 우리를 위한 선택은 다르다. 그 말은 우리는 ‘우리’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우리는 우리이기 때문에 나는 안심한다.

<정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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