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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40년여간 근무하시고 정년퇴직을 하신 뒤에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직을 하셨다. 경비원 일도 천직으로 생각하시고 즐겁게 일하셨다. 아파트 주민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셨고, 아파트 계단을 쉼 없이 걸어 다니는 일이 운동이 되셨는지 은퇴 후에 더욱 건강한 몸을 유지하셨다.

그러다가 교통사고로 두 주 정도 입원하실 일이 생겼다. 교통사고가 났다고 직장에 전화해 알렸고, 그 자리에서 전화로 해고를 당하셨다. 아버지께서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으시고 나서 우리 가족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흔한 상황이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퇴원 후에 금세 다른 아파트에 경비원 자리를 구하셨고 일주일 뒤에 다시 또 가벼운 교통사고로 입원하셨다. 다시 전화로 해고를 당하셨고 그 뒤로는 두 번 다시 취직하지 않으셨다. 지병으로 병원에 짧게 입원하실 일이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해고를 당하고 다시 취직하실 순 없으므로.

얼마 전 <임계장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임계장’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비슷한 단어로 ‘고다자’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 ‘고르기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는 뜻이라고 한다. 말은 사고를 반영한다. 그런 단어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절망스럽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니까 아버지가 얼마나 큰사람인지도 알고 그 안에 얼마나 거대한 세계가 있는지도 잘 안다. 아마 다른 노인들도 그럴 것이다. 아마 다른 젊은이들도 그럴 것이다. 사람 많은 거리를 걷다가 문득 이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거대한 하나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에 전율할 때가 있다. 오랫동안 들여다봐야 잘 알 수 있는 거대한 하나의 세계. 도구로 쉽게 쓰이고 버려질 수 없는. 사람이 한 명의 사람으로 마땅히 존중받는 세상이길 바라는 것은 너무나 큰 꿈인가. 아닐 거라 믿고 싶다.

<정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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