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과 검찰을 잘 구분하시나요? 법원에 검찰청 일을 보러 오고, 검찰청에 법원 일을 보러 오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저도 옆 건물로 가시라고 안내하기도 합니다. 엄연히 하는 일이 다른데 시민들이 이렇게 혼동하는 이유가 뭘까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법원과 검찰 건물이 나란히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 연원을 찾기 위해 먼저 서울시립미술관에 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하고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언덕밑 정동길 교회당 옆으로 가 보시죠.

서울시립미술관은 대한제국 시절 최고 법원 역할을 했던 평리원 자리였습니다. 평리원이 청사를 옮기면서 한성재판소가 그 자리를 썼습니다. 일제강점 후에 같은 터에서 자리를 옮겨 경성재판소를 지었습니다. 국권을 회복한 후에는 대법원이 그 건물을 그대로 씁니다. 대법원은 1995년 지금의 서초동 청사로 이전했고, 그 후에 서울시가 이곳에 미술관을 개관했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만, 미술관의 네모난 건물에 들어서면 가운데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습니다. 건물 위에서 그 형상을 보면 ‘日’자 형태입니다.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그들이 그렇게 설계한 건 이해하겠는데, 주권을 되찾은 후로도 그 건물을 대법원, 그러니까 우리 최고 사법기관 건물로 썼다니 의아합니다.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때 대법원이 다른 곳에서 한옥 형태의 청사를 썼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기도 합니다. 여하튼 이랬던 곳이 시민의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경성재판소 건물 안에는 판사실과 검사실이 함께 있었습니다. 법정도 있었고요. 아직까지 법원 청사와 검찰 청사가 나란히 있는 이유는 여기에서 유래합니다. 얼마 전까지 사법부 소속 사법연수원을 마쳐야 검사가 되던 시절이 이어졌고, 일하는 건물도 나란히 서 있으니 시민들은 판사와 검사를 비슷한 일을 하는 같은 집단으로 인식해 왔던 겁니다.

이제 이런 인식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2000년대 들어 변화의 움직임이 강해집니다. 형사 사건에서 증거 조사를 공개 법정에서 제대로 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됩니다. 기록과 조서로 이루어지던 형사 사건 심리에 대한 비판 수위가 계속 올라갔습니다. 기록을 집어던지란 말까지 나왔습니다. 꾸준한 논의와 협업 끝에 2007년 형사소송법이 개정됩니다. 그 법이 2008년 1월1일 시행되면서 법정을 중심으로 하는 진실 공방의 틀이 갖추어집니다. 형사 법정의 배치도 그에 따라 바뀝니다. 이 시기를 전후한 시점에 눈에 띄는 큰 변화는 영장심사였습니다. 그전까지 구속영장이 청구돼도 판사가 피의자를 심문하지 않았습니다. 서류만 보고 구속 여부를 결정했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어색하지만, 그땐 그랬습니다. 언론에서 ‘영장실질심사’라는 말을 아직도 쓰고 있죠? 특이하게 ‘실질’이라는 말을 붙이는데요, 2008년 전까지는 구속심사를 형식적으로 했으니까, 이제부터 “실질적으로 해 봅시다!”라고 해서 생겨난 말이 영장실질심사였습니다. 지금은 판사가 피의자 얼굴을 직접 보면서 이야기를 듣고 구속 여부를 결정합니다. 이제는 실질이라는 말을 빼고 그냥 ‘영장심사’라고 하면 됩니다. 

공개된 법정에서 진행되는 형사 사건의 증거 조사, 그리고 구속 전에 판사가 피의자를 직접 대면하고 구속의 적법성과 필요성을 확인하는 절차는 이제 어느 정도 그 틀을 갖추었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진행되어 온 노력의 성과였습니다. 공개된 장소에서 벌이는 변론이야말로 법원의 가장 큰 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올해로 주권을 회복한 지 74년이 흘렀습니다. 대법원이 종전 경성재판소 건물에서 나와 서초동 청사로 옮긴 지 24년이 지났습니다. 우리 것이 아니었던 예전 것들은 이제 덜어내고 진정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사법개혁, 검찰개혁을 논의하면서 바라봐야 할 곳은 법원도 검찰도 아닌, 주권자인 국민이라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한 번에 바뀌진 않았고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돌담길은 변함없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함석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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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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