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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8명을 수십차례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이재록 만민중앙교회 목사가 1심에서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종교적 권위를 지닌 이 목사가 심리적 항거불능 상태의 신도들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피해자를 정신적으로 길들인 뒤 성적으로 착취하는 ‘그루밍 성폭력’을 인정한 것이다. 그루밍 성폭력은 종교계 성범죄나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서 많이 발견되는 유형이다. 그러나 ‘강제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는 사례가 많았다. 이 목사 사건 재판부가 그루밍 성폭력을 인정한 것은 약자들의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를 위해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된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피해자들이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항거불능’ 상태에 놓여 있었는지였다. 이 목사 측은 “피해자들은 성인으로 정상적 지적 능력을 갖고 있었고, 이 목사가 교회에서 절대적 권위를 누리지도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은 이 목사를 신격화하는 교회 분위기 내에서 이 목사를 ‘성령’ 또는 ‘신적 존재’로 여겼다”며 “이 목사의 성적 행위에 대해 의심하는 것을 큰 죄로 여겨 거부할 생각조차 단념했다”고 판단했다. 만민중앙교회 측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항소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법원은 그동안 그루밍 성폭력을 인정하는 데 인색했다. 지난해에는 자신보다 27세 어린 여중생을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연예기획사 대표가 무죄 판결을 받아 논란이 됐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다른 사건으로 수감돼 있는 동안 피해자가 ‘사랑한다’는 편지를 보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두려움과 강요 때문에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다는 피해자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올해 들어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본격화하자 성범죄 소송에서 재판부의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을 강조하는 등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번 판결도 그러한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본다.

근본적으로는 입법 미비를 해결해야 한다. 현행법상 13세 미만에 대한 성범죄는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가해자를 처벌하지만, 13세 이상은 강제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처벌이 어렵다. 국회는 13세 이상에 대해서도 일정 연령까지 보호범위를 넓히는 개정안을 신속히 처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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