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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어떤 기관인가. 좁은 의미에선 3심제 사법시스템의 최고법원이지만, 넓은 의미에선 시민의 삶을 좌우하는 가치에 관한 판단을 내리고 이를 통해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가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추천한 대법관 후보자 명단을 보면, 대법원이 관료사법의 승진체계에 정점을 찍는 최종 목적지로 전락한 듯하다. 13명 중 현직 법관이 9명, 현직 검사가 3명에 이른다. 교수 1명이 들어갔지만 그 또한 지법 부장판사를 지냈다. 출신 대학을 살펴보니 서울대가 9명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여성과 변호사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전교조 소속 교사들에 대한 판결을 밝히고 있다. (경향신문DB)


대법원이 우리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고루 반영하려면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학력과 경력이 비슷하면 갖고 있는 생각도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다른 삶’을 살아온 여성 법조인과 재야법조인의 대법원 입성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럼에도 법조계에서는 후보로 거론된 여성 법관에 대해 ‘재산이 많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배제론을 폈다고 한다. 특정 법관의 경우 남편이 야당 정치인이라는 점이 약점으로 작용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민일영 현 대법관은 임명 당시 부인(박선영)이 자유선진당 의원 신분이었다. 배우자가 보수 성향이면 괜찮고, 진보 성향이면 결격사유인가. 여성 후보군이 협소하다면 ‘기수 파괴’를 통해 후보군을 늘려 인선하면 된다. ‘하늘의 절반’이 여성인데, 13명 중 단 한명도 여성으로 채우지 못했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설득력이 없다.


추천위는 “대법관으로서 갖춰야 할 법률지식이나 인품은 물론 국민과 소통하고 봉사하는 자세까지 심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추천위가 회의를 시작한 지 두 시간도 안돼 후보자 명단을 내놓은 걸 보면, 자료에서 밝힌 대로 “치밀하고 강도 높은 검증작업”이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당연직 추천위원인 법원행정처장과 법무부 장관이 대법원장과 대통령의 뜻을 대변했을 가능성이 짙어 보인다. 다수 후보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고 BBK 사건 수사책임자까지 포함된 점이 이를 방증한다.


우리는 이번 대법관 후보 인선이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라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는 데 실패했다고 본다. 따라서 이번 후보 추천은 철회돼야 하며, 대법원은 새로운 추천위를 구성해 재추천을 의뢰하는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다시 추천되는 후보 명단에 여성과 변호사가 포함돼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기존 후보 중 4명을 선택해 대통령에게 임명을 제청할 경우 국회는 인사청문 절차를 통해 이를 저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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