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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27일 공론조사의 로드맵을 발표했다. 8월 중 시민 2만명 내외를 대상으로 1차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그중 350명을 선발해 공론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그러나 이날 공론화위원회는 그동안 정부가 밝혀온 공론수렴과 의사결정 절차와는 다른 설명으로 혼선을 초래했다. 공론화위원회는 “공사를 재개할지, 안 할지 조사대상자들이 찬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것이 논란을 일으키자 부랴부랴 “찬반 결론을 내리지 않기로 결정한 바 없다”고 해명했지만 억측을 낳았다. 이는 지난 24일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을 그대로 정책에 수용할 것”이라고 밝힌 정부의 설명과는 배치된다. 일각에서는 공론화위원회가 민감한 사안인 원전 중단의 찬반을 결정하는 데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서울환경연합 탈핵자전거 원정대원들이 원전 신고리 5ㆍ6호기 백지화를 촉구하며 출발하고 있다. 이들은 9월26일까지 자전거를 타고 서울시내를 돌며 탈핵 선전전을 펼칠 예정이다. 서성일 기자

그러나 이날의 혼선은 정부가 자초했다는 비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정부는 애초부터 공론화 작업을 추진하면서 시민배심원제와 공론조사의 개념을 혼동하는 우를 범했다. 사실 시민배심원제와 공론조사는 사회적인 갈등관리 기법의 차원에서 완전히 다른 시민참여형 숙의의 실천방법이다. 시민배심원제는 법원의 국민참여재판처럼 판결의 성향이 강하지만, 공론조사는 참여진의 의견을 수렴해서 결정권자인 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날 공론화위원회가 “공론조사는 찬반 의사 결정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시민배심원제와 공론조사의 용어를 혼용하면서 개념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시민사회 일각에서도 처음부터 이런 문제점을 알았다. 그렇지만 정부가 전통적인 공론조사의 방식에서 벗어나 ‘공론조사 결과-정책 반영’이라는 혁명적인 민의수렴 방식을 모색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좋게 해석했다. 그러나 공론화위원회가 ‘찬반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공론조사의 원칙을 천명함으로써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공론조사는 한국 사회가 처음 시도하는 숙의 민주주의다. 시민의 손으로 미래세대의 안전 문제를 심도 있게 토론하는 소중한 기회이다. 하지만 원전 백지화는 찬반 양론이 각축하는 갈등 사안임을 잊어선 안된다. 시행착오가 잦아지면 자칫 원전 안전이라는 대의명분을 잃을 수도 있다. 정부는 혼선이 계속되지 않도록 고민해야 한다. 특히 혼선을 빌미 삼아 공론화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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