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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판사 100명이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등 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사건을 추가 조사하기로 의결했다. 양승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그간 행태를 보면 판사들의 결정은 당연하다. 판사들은 양 대법원장에게 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를 인정하는지 밝히라고 요구하고, 법관대표회의 상설화도 추진키로 했다. 이 정도면 양 대법원장은 임기가 3개월가량 남았지만 좌고우면할 것 없이 즉각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평판사부터 고등법원 부장판사까지 각급 법원의 대표가 빠짐없이 모였다는 것 자체가 사법부 수뇌부에 대한 탄핵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검찰도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행정처가 지난 3월 판사들의 학술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려다 들통난 것이지만 본질은 ‘사법 농단’이다. 사건 초기 양 대법원장이 진심으로 사과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했다면 수습이 가능했을 수도 있지만 거짓 해명과 꼬리 자르기로 일관하면서 일을 더욱 키웠다. 특히 진상조사위원회가 내놓은 보고서는 사법부의 자정 능력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줬다. 당시 고영한 행정처장(현 대법관)과 임종헌 차장의 개입 정황을 확인했음에도 행정처가 조직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행정처 컴퓨터에 판사들을 뒷조사한 파일이 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대법원은 여전히 여론 물타기 작업에 골몰하고 있다. 처음에는 사법부 내 헤게모니 다툼인 것처럼 몰고 가더니 지금은 법관대표회의를 지칭해 ‘판사 노조’ 운운하고 있다. 한심하고 파렴치한 작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판사들이 요구하는 것은 사법개혁과 재판의 독립성 보장이지 임금 인상이나 근무 시간 단축이 아니다. 보수 일각에서는 이번 법관대표회의 참석 판사들이 대부분 인권법연구회 소속이라며 대표성 등에 흠집을 내려 하고 있다. 회의 참석 판사 100명 중 35명 남짓이 인권법연구회 회원으로 이 연구회 소속 판사가 전체 판사의 16%가량인 것과 비교하면 비중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각급 법원에서 투표 등 정당한 절차를 거쳐 선출돼 전혀 하자가 없다. 공은 이제 양 대법원장에게 넘어갔다. 양 대법원장의 현명한 처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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