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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1911년 3월25일은 토요일이었다. 오후 4시40분, 퇴근을 20여분 남겨놓은 상태에서 8층의 옷감을 재단하는 기계 밑 자투리 천을 모아놓은 통 근처에서 불꽃이 튀었다. 미국 뉴욕의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은 10층짜리 건물의 가장 높은 층인 10층부터 8층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공장주는 노동자들이 옷가지를 훔쳐 가거나 몰래 숨어서 휴식을 취한다는 이유로 출입문 두 곳 중 하나를 언제나 잠가두었다. 공장 안에는 공업용 재봉틀과 옷감들, 자투리천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러나 공장 안에는 소화 장치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 대부분은 미국에 이제 막 도착한 여성 이주노동자로 화재가 일어나기 2년 전이던 1909년 13주간의 파업을 통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지만, 결국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공장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로부터 2년 뒤 화재가 일어나자 공장주는 가장 먼저 열쇠를 들고 탈출해버렸다. 탈출할 수 있는 곳은 옥상에서 지상으로 이어지는 비상계단과 화물 엘리베이터뿐이었지만, 화재가 발생하자 화물 엘리베이터는 작동을 멈췄고, 비상계단은 너무 부실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소방 사다리는 6층이 한계였다. 화재를 알리는 경보벨은 울리지 않았고, 뒤늦게 화재가 발생한 것을 깨달은 9층의 노동자들은 불길을 피해 뛰어내리다 추락사하거나 유독성 연기에 질식사하고 말았다.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 화재는 15분 만에 진화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모두 14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 화재는 미국 역사상 9·11 테러 이전까지 단일 사건으로 최대 희생자를 낸 사고로 기억된다.

2013년 4월24일 아침 8시45분, 방글라데시의 의류 공장 라나플라자 8층짜리 건물이 폭삭 주저앉아 노동자 1134명이 죽었다. 이미 전날부터 공장 건물에 금이 가고, 물이 새는 등 위험 징후가 있었지만, 공장주는 작업장에 들어가길 거부하는 노동자들은 두들겨 패서 강제로 작업대에 앉혔다. 세계 패션산업의 하부 구조를 지탱하는 수백대의 재봉틀이 한꺼번에 돌아가자 잠시 후 지붕과 기둥이 거짓말처럼 내려앉았고, 쇠창살로 막힌 창문과 이중 철제문, 좁은 계단과 원단으로 막힌 출구 안에서 누구도 도망칠 수 없었다.

1988년 한국의 원진레이온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900명이 유기용제 중독으로 미쳐서 자살하거나 사지마비로 신음하다 죽어갔다. 1998년 부산의 내동 창고 공사 중 폭발화재 사고로 27명이 숨지고 15명이 크게 다쳤다. 2008년 벽두 경기도 이천 공장의 화재 사고로 40명의 노동자가 화염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2015년 한 해만 하더라도 1월에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에서 3명이 질식사했고, 4월에는 SK하이닉스 이천공장에서 3명이 질식사했고, 7월에는 울산 한화케미칼 폭발사고로 6명이 숨졌다. 2016년에도 1777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최소한의 안전기준만 준수되었더라도 목숨을 잃지 않았을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매일 5명씩 죽어간다. 며칠 전(7월8일) 근로복지공단이 삼성전자 LCD 공장(현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일한 노동자의 백혈병 피해가 산업재해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LCD 생산직의 백혈병 피해가 산업재해로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진국에서는 노동자의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영국의 경우 2007년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을 제정하여 2008년부터 기업 활동 중에 발생하는 사망사고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고 있다. 개인 간에 살의를 품고 자행하는 살인과 달리 산업재해로 인한 치사에 대해 관대하게 접근해오던 그간의 관행을 깬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 관련성에 대한 증명책임이 산업재해 피해자 측에 있다. 산업재해에 대한 국가의 제도적 개선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것을 ‘국가의 실패(failure of the state)’로 보아야 한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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