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에는 부모님 댁에 가족이 모였다. 우리 집안은 추석을 변칙적으로 보내는데 다 같이 여행을 가기도 하고, 각자 개인플레이를 하기도 하고, 이렇게 부모님 댁에 모이기도 한다. 추석 전날 오전에 출발해 점심시간이 갓 지날 무렵 도착했는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탕국 냄새가 코를 어지럽혔다. 나는 명절 음식 중에서도 이 탕국을 가장 좋아한다. 처음 한 들통 끓여놓았을 때는 무와 두부가 싱싱하게 살아 있고, 이틀 정도 내리 먹다보면 국물이 짜지고 무와 두부도 절여져서 더 맛있게 되는 국이다. 집집마다 끓이는 방식은 다르지만 두부, 무, 소고기는 공통으로 들어가며 우리 집은 여기에 토란과 바지락을 더해서 끓인다. 생선은 조기와 가자미를 굽는데 이번 추석에는 조기 대신 민어조기가 올라왔다. 요즘 같은 때 참조기야 언감생심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부세조기나 백조기가 더 좋은데 모친께선 어디서 듣고 오셨는지 민어조기가 더 고급이라고 하신다. 색깔도 거무튀튀한 것이 전형적인 민어 새끼처럼 생겼다. 먹어보니 감칠맛도 훨씬 떨어지고 좀 비리더라. 

한 그릇 뚝딱하고 송편 두어 개를 집어 먹었더니 손에 참기름이 묻어 욕실로 씻으러 들어갔다. 세면대에 노란색 다이알 비누가 놓여 있다. 아! 이 다이알 비누, 내가 아주 어릴 때 썼던 비누인데 싶은 마음에 더럭 반가웠다. 비누칠을 하자 특유의 진한 비누 향이 올라왔다. 아! 이 향기. 갑자기 온몸이 현실과 차단되며 수십년 전의 고향집 앞마당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수돗가, 세숫대야, 세숫대야가 놓인 시멘트 바닥, 뒷주머니에 수건을 찔러 넣고 목과 귀의 뒤편까지 비누를 잔뜩 칠한 아버지의 옆모습, 얼굴에 어푸어푸 물세례를 퍼붓는 장면, 뽀드득 뽀드득 발목을 문지르는 손의 감각, 코에 남은 잔향, 얼굴에 와닿는 바람, 눈을 찌르는 햇빛, 아침마다 동네를 순회하던 쓰레기 수거 트럭의 지붕 위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나오던 새마을 찬가. 불러오기가 돼버린 공감각 앞에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욕실에서 나와 어머니에게 다이알 비누가 어디서 났냐고 여쭈니 마트에 가셨다가 눈에 보여 부모님도 반가운 마음에 여러 개를 사셨다고 한다. 그래서 두 개를 얻어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이틀 동안 열심히 써봤다. 이 비누를 사용하면 세안을 적극적으로 하게 된다. 비누칠도 손에서 오랫동안 돌려가면서 하게 되고, 입에서 푸푸거리는 소리를 내게 된다. 그리고 기름기가 완벽하게 제거된 피부를 만족스럽게 어루만지게 된다. 인터넷에서 좀 검색해보니 다이알 비누는 기름기 제거에 탁월한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추억의 비누라면서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리뷰를 해놓은 글이 많은 걸 보니 최근에 많이들 사용하는 것 같았다.

다이알 비누는 20세기 후반을 관통하는 한국 현대의 가정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비누다. 비록 국산은 아니고 미제이지만 미제가 최고이던 시절 우리 고단한 삶의 기름때와 흙때를 벗겨주던 비누다. 물론 다이알 비누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로 국한된다. 그 이후 우리 집에서 썼던 비누는 애경 럭스비누, 살구 비누, 오이 비누, 알뜨랑 비누, 아이보리 비누 등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 가운데 알뜨랑 비누를 가장 싫어한 편이었다. 다이알 비누와 가장 비슷한 향이면서도 뭔가 빈틈이 있고 시금털털한, 집중력이 떨어지는 좋아할 수 없는 향이었다. 동네 대중목욕탕에 알뜨랑 비누가 비치돼 있었던 것도 내가 싫어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이 비누를 떠올리면 동네 목욕탕의 벌거벗은 남자들이 함께 떠오른다. 

냄새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간혹 이번 다이알 비누 사건처럼 냄새의 습격을 당할 때가 있다. 구체적인 물건의 냄새라기보다는 봄날 내리는 빗속에 섞인 미묘한 냄새, 오래된 벽지에서 나는 냄새, 지하실 냄새 등이 그렇다. 시각과는 달리 후각은 훨씬 내밀한 경험을 불러낸다. 대부분은 잊고 있었던 무의식 속의 기억들이다. 왜 그런지 좀 찾아봤더니 신경생리학적인 답이 이미 나와 있었다. 후각 정보를 처리하는 곳은 대뇌의 변연계라는 부분인데 이곳에서는 후각 정보뿐만 아니라 감정, 장기 기억, 욕망 등을 함께 관장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냄새를 맡는 순간 변연계 깊숙이 새겨져 있던 장기 기억의 일부가 잠깐 반짝거리며 되살아나는 것이다. 반면 신경생리학적으로 볼 때 후각중추가 있는 뇌변연계는 언어중추가 있는 영역과 신경적 연계성이 약하기 때문에 후각 경험은 언어화되기 힘들다고 한다. 이는 전 세계 공통적인 현상이다. 새삼 떠올려보면 냄새를 묘사해주는 형용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다이알 비누 냄새도 다이알 비누 냄새일 뿐 언어적으로 표현할 방법은 없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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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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