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친구가 있었다. 아직 일본에 가보지 못한 때였기에 친구의 말을 경청했다. 하긴 두어 번 가보았다 한들 얼마만큼 그 나라를 잘 알 수 있었을까. 꽤 오랫동안 일본에 머물렀다 온 친구는 그 나라의 번영과 기술과 그들의 청결과 질서의식에 감동한 듯했다. “솔직히 나라를 보나 국민을 보나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멀었어.” 갑자기 우리를 비교하는 친구의 입에서는 금방이라도 ‘조센징’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불편해진 내 눈빛을 읽었는지 친구가 덧붙였다. “과거는 과거고… 어느 모로 보나 우리는 일본을 배워야 해.”

아직 우리 사회가 혼란의 와중에 있던 시절, 친구는 일본의 안정된 사회질서와 경제적 번영을 몹시 부러워하는 듯했다. 사실 친구는 ‘그들과 같은 경제적 풍요만 누릴 수 있다면 다른 것은 무슨 상관이랴’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패전에도 불구하고 그만큼의 번영을 이루었으니 과거는 상관없다고 믿는 것 같았다.

친구의 오래전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시라이 사토시의 <영속패전론> 덕분이었다. 시라이 교수는 일본에서 기승을 부리는 내셔널리즘과 자신감의 정체가 패전에 대한 부인과 긴밀한 관계를 이루고 있고, 사실은 패전으로 인한 열등감에서 출발한다는 신랄한 지적을 하고 있었다. 거의 50년간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구가해온 일본의 ‘전후체제’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 심리에 의존한 것이었는지를 뼈아프게 반성하는 내용이었다. 친구의 오래전 이야기처럼, 이 분석은 한국 버전으로도 읽을 수 있었다. 혹시 우리 중 일부는 식민지배를 받은 열등감 때문에 일본처럼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은 아닌지.

한국 시민의 ‘NO아베’ 움직임에 연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4일 오후 도쿄 신주쿠 역 앞에서 반(反) 아베 집회를 열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영속패전론>의 분석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요컨대 일본은 평화와 번영이 지속되는 동안은 패전의 인정과 과거사 반성이라는 ‘다테마에’(겉모습)를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었지만, 버블경제의 붕괴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전후체제의 한계와 쇠퇴에 직면해서는 패전을 부인하고 과거의 영광으로 회귀하려는 ‘혼네’(속마음)를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얘기였다. 여기에는 미국에의 철저한 종속과 냉전 와해 등 복잡한 사정이 있기는 하지만, 한마디로 “우리는 너희에게 패배하지 않았다, 미국에게 패배했다”는 심리로 요약된다는 분석이었다. 아시아에 대한 태도와 미국에 대한 태도는 우월감과 굴종이 뒤범벅된 집단분열증으로 나타난다. 패전을 부인함으로써 패전의 상태를 영속화하고, 가해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피해(원폭피해 등)의 명분을 획득하려는 이중성이 ‘영속패전’의 심리를 만들었다고 시라이 교수는 말하고 있었다.

사실 일본의 ‘전후체제’라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지는 몇 가지만 짚어보아도 금세 드러난다. 일본의 전후 평화와 민주주의는 냉전의 최전선에 있던 한국과 대만에 짐을 떠맡김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가령 일본이 북한과 중국에 직접 대치하는 입장이었다면 그들의 민주주의는 가능했을까? 적의 직접적 위협 앞에서 일본이 독재와 군사체제를 택하지 않았으리라 믿기 어렵다. 어떤 사람은 공산당과 사회주의를 허용해온 일본을 어찌 민주국가로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옹호하지만, 그런 ‘민주주의 흉내’는 미국의 그늘 아래에서 손해는 전가하고 이익만을 취할 수 있었던 위치였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냉전이 와해되고 한국과 북한의 평화 관계가 가능해진 단계가 되자, 그들도 더 이상 민주주의 흉내를 걷어치우는 것을 보면 그렇다. 혐한 발언이 활개를 치고, 원전의 실상을 감추고, 극우정당이 약진을 해도 문제가 없다고 느낀다. 평화헌법 제9조를 개정하겠다는 아베와 극우세력의 꿈을 가시화시키고 있어도 놀랄 게 없는 이유다.

강제징용과 일본군 성노예의 사실을 부인하고 도리어 경제보복이라는 수단을 꺼내든 것은 일본의 자기 과신 내지 망상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것은 패전 대신 천황의 영광스러운 과거를 국가적 정당성의 준거로 삼음으로써 가능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이자 전쟁이 아닌 상태, 곧 칼 슈미트가 말한 ‘예외상태’를 지속함으로써 국가를 지탱할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인지도 모른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우리에게 얼마나 결정적인 것인지 나는 잘 모른다. 우리가 이토록 분개하는 것이 일본처럼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는 나라, 식민지배를 당한 열등감을 숨기고 당당한 내셔널 국가를 세우고 싶어서라면 나는 분노를 접고 싶다. 비록 미완일지언정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우리 손으로 민주주의를 세워왔고, 일찌감치 ‘제국’이기를 거부하고 ‘민국’을 세우기를 열망했던 3·1운동의 나라이다.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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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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