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출판인들은 맨날 아프다고 비명인가. 희망이 없다고 아우성인가. 이 환자병 의식을 바꾸어야만 출판산업의 미래가 있다고 한 출판인이 말했다. ‘단군 이래 불황’은 출판계 입문 때부터 들어온 진부한 말이긴 하다. 그러나 현실은 진부함 속에 실감나게 담겨 있는 법. 지식과 정보와 감동을 전달하는 매체로서 출판은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그러나 온라인과 연계된 출판, 디지털화한 텍스트 그리고 독자의 감수성을 높이 사는 아날로그형 출판, 일관된 논지를 매력적으로 펼치는 강의형 저자의 인문서 등은 시장을 만들어가면서 출판의 미래를 밝히고 있다. 전체 산업의 시장이 좁아진다고 표현했지만 새로운 인접 시장이 커진다고 말할 수 있다.

출판계에 들어와서 놀랐던 점은 업계에 정보가 넘치는 것이었다. 출판사에서 일어난 특이한 사안은 다음날 바로 퍼져나간다. 근본적으로 출판인은 호기심이 많고 정보에 민감하긴 하다. 이 넘치는 정보를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례도 있다. 한 권의 책은 독과점 상품이기에 경쟁 상품은 없다. 아니 오히려 한 권의 책이 잘 팔려나가며 활성화되면 다른 책도 팔리는 시너지 효과가 있다. 그래서 경쟁 없는, 각각 고유의 책을 만드는 출판인들은 서로의 제작 후기나 영업 노하우 같은 것을 서슴지 않고 공유하려 한다.

최근에는 기획도 공유하고 집행을 함께하는 재미있는 사례도 있다. 작은 출판사 셋이 모여서 하나의 시리즈를 만드는 것이다. 시리즈란 일관된 형태로 완간을 목표한 기획 편집 출판물인데, 하나의 출판사가 아닌 세 출판사가 <아무튼> 시리즈를 만들어가고 있다. 책 표지의 출판사 이름을 보지 않아도 이 시리즈를 즐길 수 있고, 세 출판사가 출간하고 있으니 규모가 작은 하나의 출판사가 냈을 때보다 출간 속도가 빠르다. 시리즈를 좋아하는 독자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는 셈이다. 세 출판사는 서로 상생을 모색하기 위해서 기획의 기본 요건을 논의하고 자유롭게 책을 내고 있다고 한다. 매력적인 산업의 융통성이 발휘되고 있다고나 할까.

내가 일하는 마음산책도 작년 봄에 두 출판사와 머리를 맞대고 이벤트성 출간을 시도했다. 책 제목과 저자를 포장지로 가린 채 세 출판사의 이름을 붙인 ‘X북’을 출간한 것이다. 이 이벤트를 벌이게 된 배경은 이러하다. 재미있게 독자에게 다가가자. 제목과 저자를 보고 고르는 구매의 정석 행위를 배반하는 방식으로 흥미를 던져주어 책에서 멀어지는 독자의 호감을 사보자는 것이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판매도 좋았지만 표지를 가린 채 판매한 기간 동안 제목과 저자를 알아도 함구해달라는 세 출판사의 요청에 독자가 응한 것이다. 무려 3주일 동안 비공개 상태로 책이 2만부 이상 팔리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3주 이후엔 더 이상 포장지를 씌우지 않았지만, ‘바로 그 이벤트 책’이었다는 입소문 때문에 꾸준히 팔리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올해 또 세 출판사가 작년과는 다른 형태의 ‘2탄’을 시도했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선별해 국내 초역으로 동시에 출간한 것이다. 소설과 산문, 편지를 각각 동시에 출간한 것은 기획부터 편집까지 온갖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세 권의 책은 판형과 본문 편집, 표지 디자인에 일관성이 있다. 동시에 출간하는 데 의미도 있지만 하나의 시리즈를 만들어냈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둔 것이다. 한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했다면 책의 메시지와 가치로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세 출판사가 시리즈처럼 출간함으로써 작가를 새롭게 조명하는 면모와 독자와 즐겁게 만나려는 책 출간을 둘러싼 스토리텔링을 갖게 되면서 매력적인 지점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이제 출판은 시장의 불안정성 속에 창의적인 작업을 해야 하는 어려움 한복판에 있다. ‘단군 이래 불황’의 진부한 표현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독자와 즐겁게 소통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어떨까. 책 자체에 의미 변화가 필요하다기보다 독자가 책을 만나는 방식에 새로움이 필요하다. 세 출판사가 함께 기획하고 시리즈를 만든 것은 꾸준히 출판하려는, 완창하고자 하는 무대에서 기운과 흥을 북돋는 추임새와 같은 것이다. 읽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즐겁게 불러일으키는 것, 책을 구매하는 것으로 그 즐거운 이벤트에 동참했다는 어떤 뿌듯함이 생길 수도 있다.

태어날 때부터 건강하지 못한 게 아니라 여러 상황으로 환자로 되어버린 출판은 어떻게 건강을 회복할 수 있나. 노력은 작은 데에서, 이를테면 몸을 살리는 운동 같은 데서 시작할 수 있다. 진부함을 버리고 조금 새롭게, 추임새를 넣는 방식을 찾고 싶다.

<정은숙 |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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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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