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반 칼럼

[산책자]책을 살리는 방법

경향 신문 2017. 8. 21. 13:55

“책 사면 세금 깎아준대!”

지난 8월2일 기재부가 발표한 도서구입비·공연관람비 소득공제 소식을 한마디로 전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년 7월1일부터 책과 공연에 지출하는 비용을 연간 100만원까지 지출의 30%만큼 소득에서 공제해준다는 게 이번 세법개정안의 골자다. 수많은 뉴스에 이 소식이 묻혀서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일부러 쓴다. 책 좀 많이 사시라고. 출판계는 그간 소득공제보다 좀 더 직접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세액공제를 줄곧 주장해왔지만 이렇게나마 요구가 반영된 것을 반기는 분위기다. 우리 출판사 편집장과 점심을 먹고 산책하다가 이 얘기가 화제에 올랐다. 이제 책이 좀 팔릴까?

매사에 냉소적인,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편인 편집장은 “이미 책을 많이 사던 사람은 좋겠지만요, 그 외에는 그닥…” 하고 말끝을 흐린다. 원래부터 책을 많이 사던 사람이야 변함없이 책을 사겠지만, 일 년 내내 책 한 권 읽지 않는 사람이 몇 권의 소득공제 혜택을 보겠다고 안 사던 책을 살 리 만무하다는 뜻이겠다. 그럼 도대체 출판을 되살릴 방법은 뭘까 하는 내 한탄에 편집장은 그 성격대로 “사양산업이에요”라고 딱 잘라 말한다. 무정한 친구 같으니…. 자기도 이 업계에서 일하는 주제에.

지난주 만난 다른 출판사 영업자의 말도 떠올랐다. “동네서점요? 거기서 무슨 책이 팔려요. 사는 사람이 아예 없어요.” 그러면 그곳들에 책을 공급하는 도매서점들은 그래도 늘 출판사에 주문을 하는데 그건 뭐지? 영업자의 대답은 대개가 납품으로 나가는 책이란다. 서점이란 책을 파는 곳인데 이젠 책을 파는 곳이 없다고 덧붙인다.

아마도 내게 착시가 있었을 것이다. 가끔 언론에 소개되는 독특하고 기획력 돋보이는 동네책방들을 보며 차츰 실핏줄이 살아나는가보다 착각한 모양이다. 하긴 그렇게 소개되는 책방들이 통틀어 열 군데나 되려나? 전국에 열 군데 말이다. 대형서점이라고 사정이 다른 것은 아니다. 책으로 매출을 맞출 수 없으니 문구류가 책 진열공간을 자꾸 잠식하고, 매대와 벽면의 광고판매로 수익을 맞추려고 한다. 여기에 분개하는 출판인들도 많지만, 이런 궁여지책을 보며 분개만 하기도 어렵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정말로 의아한 생각이 든다. 그 많던 독자는 다 어디로 갔을까? 그때에도 책 읽는 사람이 그리 많았던 건 아니지만, 고등학교 한 반에 대여섯쯤은 책 읽는 녀석들이 있었다. 옆집의 영애 누나도, 뒷집의 만득이 형도 늘 배 깔고 엎드려 비록 로맨스나 무협소설일지언정 읽고 또 읽었다. 이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으며, 그들의 후세들은 왜 이어지지 않는 것일까?

나와 이야기를 이어가던 편집장은 책과 출판의 몰락에 대해 “사회가 바뀌지 않는 한”이라고 진단했고, 나는 “교육이 달라지지 않는 한”이라고 진단했다. 사회가 지금처럼 고강도 경쟁체제를 유지하는 한, 학력과 학벌이 개인능력 평가의 기준인 한, 입시경쟁에서 이겨야만 어엿한 사회인으로 대접받는 한, 교실과 사교육 현장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학생들은 책 한 권 읽어본 경험 없이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에 나갈 것이다. 그들은 조금 어려운 책 한 권도 읽어낼 능력을 갖추지 못할 것이고, 새삼 책을 다시 잡을 이유도 모를 것이다.

이야기는 어느새 거대해져서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 경제 규모가 작지 않은데 부의 불평등한 분배 현상만 바로잡아도, 기본소득 같은 제도만 실시되어도, 어쨌건 삶의 여유와 질만 확보될 수 있다면, 책이 이처럼 안 읽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책과 출판뿐이랴. 누구나 우리 사회가 그렇게 나아지기를 바라지 않는가.

답도 아닌 답을 찾느라 애쓰지 말고 당장 효과적인 방안이나 생각해보자고 했다. 나와 편집장은 도서관을 늘려야 한다는 데 금방 의견이 일치했다. 무엇보다 책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야 한다. 도서관을 더 지어야 하고 누구나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 도서관의 장서 예산은 출판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시민을 위한 것이므로 얼마든지 공공지출의 명분이 있고, 실제로 민주사회에 필수불가결한 시민적 자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지자체 위주로 운영되는 현재의 공공도서관 정책에서 가령 인구 1만명당 500석, 장서 1만권을 갖춘 도서관 설립을 법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을까?

이야기는 여기서 그쳤다. 왜냐하면 편집장의 마지막 한마디에 회사로 발을 돌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사장님, 일단 우리나 살고 봐요.”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