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주 토요일 나는 대학로 도로 위에 앉아 있었다. 세계 시차 때문에 하루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날 전 세계 수백만명 규모로 열린 ‘기후위기 비상행동’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눴고 주변에는 젊은 외국인 청년들까지 꽤 많이 보여 흐뭇했다. 한편으로는 약간의 실망감도 들었다. 옆에 앉은 지인에게 말했다. “2만~3만명은 모여야 하는 것 아닌가요? 캐나다나 호주에서는 50만명씩 모였다는데 말이죠.” 집회 후 발표된 숫자를 보니 5000명이 모였다고 한다.

우리는 집회 후 대학로에서 종각까지 한 시간여를 행진했고, 종로 아스팔트 한복판에 일제히 드러눕기도 했다. 기후위기로 우리 모두 죽게 될 거라는 의미의 다이-인(die-in) 퍼포먼스였다. 찌푸린 하늘 아래서 아스팔트 위의 매캐한 타이어 냄새를 맡으며 생각했다. 급진적인 생태운동가들은 자기 하나로 인한 생활 오염을 참지 못해 자살까지 감행한다는데,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물론 그것이 옳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나는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을지, 누워서 자문했다.

2018년 8월 어느 뜨거운 금요일에 스웨덴의 한 소녀가 학교 대신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를 외치며 매주 금요일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지금 우리 지구, 우리 집이 불타고 있으니 당장 행동해야 한다”는 소녀의 외침은 그날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가 133개국 청소년 160만명이 동참하는 캠페인이 되었다. 기후행동을 위해 고등학교 진학까지 미룬 이 16세 소녀의 이름은 그레타 툰베리다.

툰베리는 지난 8월 비행기를 거부하고 자가동력 요트로 대서양을 건너 기후정상회의가 열리기로 예정된 뉴욕에 도착한다. 툰베리는 강박적 집중력을 증세로 하는 경미한 자폐증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다고 하는데, “그 덕분에 제가 기후 문제에 이렇게 집중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몰라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할 줄 아는 소녀다. 

이 소녀에 대해 세계 정치지도자라는 어른들이 막말을 쏟아냈다. 트럼프는 “밝고 멋진 미래를 기대하는 아주 행복한 어린 소녀로 보였다”고 역겨운 조롱을 했고, 일본 환경상 고이즈미는 “기후변화와 같은 큰 문제는 즐겁고 멋지게,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멍청한 말을 농담이랍시고 내뱉었다. 툰베리에 우호적인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조차 “툰베리의 사고방식은 너무 급진적이다.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기업들을 적대시하는 성격이 있다”며 태평한 논평을 늘어놓았다.

대학로 집회가 끝난 며칠 후 툰베리가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한 연설을 유튜브로 보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말을 이어가는 소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울렸다. “대멸종이 시작되는 이 지점에서도 여러분이 하는 이야기는 전부 돈과 끝없는 경제성장의 신화에 대한 것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정말로 지금 상황을 이해하는데도 행동하지 않는 거라면, 여러분은 악마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툰베리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어른들, 눈앞의 정치적 이해와 기업 이익에 찰떡처럼 붙어 있는 지도자들과 달리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 ‘돈과 끝없는 경제성장’의 집착이 미래 세대에게 가할 위협을 지금 당장 닥쳐오는 자신의 삶과 생존의 문제로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행동하는 청소년과 달리 대개의 어른들은 불과 10년 후 다가올 1.5도 기온 상승을 내 문제로 보지 못한다. 지구촌의 현란한 질주를 나 하나의 행동으로 어쩌겠느냐며 강 건너 일로 생각한다.

최근 출간된 <기후위기와 자본주의>라는 책이 이 부분을 잘 짚고 있다. 책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소비주의 욕망에서 벗어나 희생을 감수하라고 말하는 식의 녹색 소비운동이나 실천은 방향을 완전 잘못 잡은 것이라고 말한다. 정치지도자들이 기후변화의 근본적 해결책을 거부하는 속내는, 그것이 기업의 이윤을 위협하고 전 세계 모든 주류 정당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에 대한 정면도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경제적 과실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생각하면, 우리들 시민과 노동자 대다수는 기후 불평등과 경제 불평등이라는 이중의 뺨따귀를 맞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도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기업들이 배출한 비닐 쓰레기를 하나하나 골라내면서 분통을 터뜨린다. 이 모욕적인 상황을 왜 견뎌야 하는가? 아마도 그들은 가장 나중에 죽을 것이다. 대도시와 기업에서 펑펑 써댈 전기를 위해 오래된 땅과 삶을 포기해야 했던 밀양의 할머니들처럼, 가장 약한 우리 중의 누군가가 먼저 죽을 것이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