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 끝내주는 국숫집이 있다. 칼칼한 맛도 맛이지만 그 옥호가 특히 눈길을 끈다. ‘언 칼국수’. 간판에 ‘言’이라고 한자로 딱 박혀 있다. “言. 날카로운 칼과 口가 합친 것. 칼로 까칠까칠하게 만들듯 하나하나 확실하게 구별되는 게 말”이라고 옥편은 그 자원을 풀이한다. 무심코 그냥 하는 게 말인 줄로 안다. 언어가 없다면 세상은 분별될 수 없다. 제아무리 깊은 궁리를 해도 말이 없다면 무엇으로 그 궁리를 바깥으로 운반할 수 있겠는가. 옹알이만 하다가 일생이 지나간다. 한편 그것을 그것이라 말해버리면 그것밖에 되지 못하니 이 말의 감옥은 또 어쩔 것인가. 말, 그게 결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틉틉한 멸치국물에 색다른 고명. 한 숟가락 뜨면 맑아도 그릇 속은 깊고 묘하다. 이 쫄깃하면서도 뚝뚝 끊어지는 면발을 이 이름에 담은 것일까. 말끔히 비우고 난 뒤 주인을 찾았더니, 원래 ‘언니네 칼국수’였는데 상호등록을 하려니 한자가 필요해서 언(言)으로 했다고 한다. 얼큰했던 맛이 확 깨는 싱거운 답이 아닐 수 없었다.

심학산 자락에서 놀다가 저녁을 맞이했다. 간단하게 때우자며 출판단지 입구의 청국장집, ‘진달래’로 갔다. 주말이라 오히려 한가해서 우리 둘은 특별 대접을 받는 기분이다. 보리밥을 바탕으로 각종 나물과 큼지막한 상추에 고추장을 섞어 밥을 비볐다. 밥알 하나하나가 다 살아 있어 막걸리 안주로도 훌륭하다. 몇 술 뜨는데 비로소 라디오 소리가 걸어왔다. <배미향의 저녁스케치>에서 전해주는 날씨 소식. 먼 지방에는 비, 경기에는 돌풍이 분단다. 그 끝에 오늘은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라고 했다.

공터로 나오니 전혀 다른 국면의 세상이 또렷하다. 눈앞의 풍경은 언어의 집합이기도 하다. 산과 들판, 집과 골목이 있다. 이들을 가능케 하는 햇살이 짱짱하다. 텃밭 옆에 건장한 건 살구나무였다. 노란 열매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아직은 밍밍하고 떫은 맛. 여름의 한 지극한 경지인 하지이니 오늘이야말로 열매는 가장 당도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가물가물한 하늘에 저물어가는 기해년의 하지. 나무 아래서 그 이름만 겨우 알 수 있는 살구를 툭 건드리자 가지가 살짝 흔들렸다. 살구나무, 장미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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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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