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은 반지하에서 아무 계획 없이 살던 이였다. 하지만 4수생인 기택의 아들이 부잣집 박사장 딸의 과외선생이 되자 나머지 구성원들도 다 그 집에 취업하고픈 욕망을 갖는다. 희대의 사기를 동원한 끝에 기택과 아내, 그리고 딸도 결국 박사장 집에서 일자리를 마련하는 데 성공한다. 넷이서 돈을 번다면 얼마 안 있어 반지하를 벗어나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 꿈은 실현되지 않았으니, 그건 바로 기택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박사장네 가족들은 기택네 가족에게서 불쾌한 냄새를 맡는다. 박사장은 그걸 ‘가끔 지하철을 타면 나는, 행주 삶는 듯한 냄새’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냄새가 난다고 말할 때, 사람은 위축된다. 기택은 냄새를 없애보려 노력하지만, 딸의 일갈은 그런 노력이 헛수고임을 말해준다. “그거, 반지하 냄새야.” 결국 분노한 기택은 사고를 치고, 그 대가로 박사장네 가족은 파멸을 맞는다. 여기에 대한 소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인간인데 자존심은 지켜야 한다는 쪽과, 당장 먹고사는 게 중요하니 참아야 한다는 쪽, 둘 다 틀린 의견은 아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국과 일본의 경제전쟁이 한창이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우리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로 맞서고 있다. 논란이 되는 것은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이 체결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다. 당시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3억달러를 받았는데, 일본에 강제로 징용당한 우리 국민들의 청구권이 여기에 포함됐는지에 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우리 측은 청구권이 살아있다고 판단하지만, 일본은 한국 정부가 돈을 받아놓고 피해자에게 보상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 사안을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작년 10월 대법원에서 결론을 낼 때 7명은 다수의견을 냈지만, 3명은 별개 의견을, 2명은 다수의견에 대해 반대의견을 낼 정도였다. 물론 이걸 빌미로 경제전쟁을 선언한 일본의 행위는 치졸하다. 게다가 일본은 식민지배 이외에도 숱하게 우리를 괴롭혔다. 국민들이 일본을 규탄하고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안타까운 것은 정부가 이 문제 해결에 그다지 성의를 보이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정부가 볼 때는 이번 사태가 꼭 불리하기만 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전쟁에 들어가면 정권의 지지율이 오르는 데다 경제가 나쁜 것에 대한 책임을 일본에 전가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일본을 매개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한·일관계의 악화는 재앙 그 자체다. 일본음식점 주인은 텅 빈 가게를 보면서 눈물짓고, 여행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기업들은 부품을 수입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른다. 누군가는 이 사태가 ‘하늘이 주신 전화위복의 호기’라며 일본 부품의 국산화를 주장하지만, 국산화라는 게 말처럼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 한일청구권협정에 관해 다른 의견을 내거나, 정부가 일본과 협상하라고 목소리를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른바 ‘문빠’로 일컬어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세력이 그런 사람들에게 ‘토착왜구’ ‘너희 나라로 가라’ 같은 막말을 해대기 때문이다. 정부 대응에 대해 회의적인 멘트를 날렸다는 이유로 방송사 앵커가 하차하기도 했다. 이 나라의 민정수석이란 분도 합세한다. 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에 대해 한국 정부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땅히 친일파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정권을 비판하면 빨갱이로 몰리던 시절을 겨우 견뎌냈는데, 이젠 친일파가 될까 봐 눈치를 보게 생겼다.

현시점에서 정부가 입장을 바꾸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일본의 ‘선빵’을 멋지게 맞받아쳐 놓고 인제 와서 굽히자니 영 자존심이 상한다. 하지만 책임 있는 정부라면 자존심에 너무 얽매여서는 안된다. <기생충>에서 기택이 한 선택은 한 가족만 파탄시켰지만, 정부의 선택은 수많은 이를 파탄으로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독도 문제처럼 우리 주권에 해당하는 사안이라면 끝까지 싸워야겠지만, 이번 사건은 대법원 판결을 둘러싼 해석의 문제니 얼마든지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은가? 787년 전, 몽골이 고려를 침공했을 때 무신정권은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며 항쟁의 길을 택했다. 적당히 항복을 받고 전쟁을 끝내려던 몽골은 이 조치에 격분한다. “(몽골 장수) 살리타는 이참에 아예 고려를 완전히 제압하고자 강화도를 공격하는 대신 분풀이 삼아 한반도 전역을 유린하기로 마음먹었다.”(<종횡무진 한국사 1권>, 463쪽)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사로잡힌 백성은 20만이 넘고, 죽은 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467쪽) 결국 고려가 사신을 보내 항복하기까지 했으니, 고려가 그 항쟁으로 얻은 것은 없었다. 물론 지금의 한국은 당시 고려보다 낫고, 지금 일본은 당시 몽골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 경제전쟁이 일본보다 우리에게 더 큰 손해를 입힐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난, 정부가 자존심을 잠시 접어두고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련다. 이러면 내게 어떤 말이 쏟아질지 잘 알고 있기에, 미리 얘기한다. 그래, 나 친일파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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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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