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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코로나19 사태 초기만 해도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겸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건강해 보였다. 그 뒤 정 본부장의 모습은 점차 초췌해졌는데, 외모만 본다면 요 몇 달 사이 10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간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 본부장의 일정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아침 7시, 새벽 사이에 발생했던 코로나19 소식을 보고받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해 8시 방역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하고, 11시에는 확진자 관련 역학조사 결과를 검토한다. 이런 일정은 밤늦게까지 계속되는데,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종합보고를 받고 전략 수립을 세우는 게 끝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할 말을 잃게 된다. 주 52시간이 의무화된 시대에 하루 14시간씩, 휴일도 없이 일하는 분이 있다니, 아무리 비상시국이라 해도 좀 너무한 게 아닌가 싶다.

원래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나 질병관리본부(질본)처럼 국민 건강을 다루는 부처에서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구호가 상식이었다. 열심히 해도 티가 잘 나지 않지만, 한 번 실수하면 그 폐해가 종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5년 발생한 메르스 사태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지역에서 메르스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지만, 방역당국은 이에 대비하지 못함으로써 1번 환자가 중동에서 감염된 채 귀국하는 것을 방치했다. 그 뒤 메르스 종식 선언이 있기까지 질본은 최선의 노력을 했지만, 이미 소를 잃어버린 뒤였다. 징계가 따른 것은 당연한 수순. 당시 본부장이던 양병국은 해임, 긴급상황센터장이던 정은경과 권준욱 정책관은 정직 처분을 받는다. 그 뒤 양병국은 정직, 정은경은 감봉으로 징계가 완화되지만, 이에 상처받은 이들은 하나둘씩 질본을 떠난다. 하지만 정은경은 질본에 남았고,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본부장으로 승진한다. 

그로부터 3년 뒤 닥친 코로나19의 유행은 그가 질본에 남아준 게 얼마나 다행인지를 확인케 했다. 이 바닥이 잘해야 본전인 건 맞지만, 밤낮없이 일하는 정은경의 모습은 전 국민을 감동시켰고, 미국과 유럽의 방역 실패가 겹치면서 그는 일약 국민 영웅이 된다. 그가 코로나19 사태의 고통 분담 차원에서 월급 10%를 반납하기로 했을 때, 이에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온 것은 그가 국민으로부터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그런데 정은경은 어떻게 징계를 받고도 본부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을까? 고시 출신 공무원이 많은 질본에서 그가 몇 안되는 의사 출신이기 때문이다. 질본이 감염병에 대처하는 게 가장 큰 임무라면, 그 역할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이는 역시 의사이니 말이다. 이번에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 부본부장을 맡아 정은경을 돕는 권준욱 국립보건연구원장 역시 의사 출신. 그러나 아쉽게도 질본에 근무하는 의사는 몇 명 안되며, 특히 감염병 대처에 필수적인 역학조사관 중 의사 출신은 2명에 불과하다. 이는 국내에 유통되는 의약품의 허가를 책임지는 기관인 식약처도 마찬가지다. 올해 식약처는 신기술 의료제품을 심사할 임상의사 8명을 모집했는데, 응모한 이는 단 3명에 불과했다. 

수백명의 의사가 근무하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나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달리, 우리나라의 질본과 식약처는 도대체 왜 의사들에게 인기가 없는 것일까? 문제는 낮은 보수이다. 질본이 공고한 역학조사관의 연봉 하한액은 6100만원 수준. 일반인 기준으로는 많은 액수지만 이 연봉에 지원할 의사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지난 3월 역학조사관에 지원해 화제가 된 김연주 전문의의 말을 들어보자. “동료 의사에 비하면 낮은 보수인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역학조사관의 보수체계가 개선된다면 더 많은 동료 의사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다.” 

가정해 보자. 질본에 믿고 맡길 수 있는 의사들이 조금 더 있었다면 어땠을까. 정 본부장이 브리핑부터 대책 마련까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하루 3~4시간 수면이라는 살인적인 스케줄에서도 해방시켜 줄 수 있었으리라. 물론 이들 기관에서 의사를 뽑으려면 추가적인 비용이 투입돼야 하지만, 그 비용이 아무리 크다 한들 방역 실패로 우리나라가 감당해야 할 비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게다가 아무리 뛰어난 능력자라 할지라도 혹사에는 장사가 없으며, 나이로 보아 그가 질본에서 봉사할 수 있는 것도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질본과 식약처에 의사를 충원하자. 날로 초췌해지는 방역 수장을 보면서 국민이 마음 아파하는 일이 없도록.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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