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16년 12월24일이 생각난다. 그때 경남 창원에서 열린 촛불집회 연단에 24세의 청년노동자가 올라왔다. 20세에 취직해 4년째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전기공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는 궁금해서 촛불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박근혜 퇴진 이후에 자기 삶이 나아질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고 했다. 그 후 2년이 흘렀다. 지금, 그 노동자의 삶은 나아졌을까?

정권은 바뀌었지만, 바뀌지 않은 것이 너무나 많다. 하루하루 들려오는 소식이 참혹하다. 지난 11일 24세의 청년노동자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저는 우리나라를 저주합니다”라는 어머님의 절규가 가슴을 찌르며 파고든다. 지난 3일에는 3번의 강제집행을 당하며 갈 곳이 없게 된 30대 철거민이 “3일간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한강에 투신했다. 이것이 2018년 연말을 맞는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이런 현실을 개선해야 하는 것이 정치의 몫이지만, 대한민국 정치는 비정규노동자들의 목소리에도, 철거민의 목소리에도 귀를 닫고 있다.

그런 와중에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자유한국당과 손을 잡고 2019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앞두고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웹자보에서 ‘예산안은 국민 밥그릇이고, 야 3당이 주장하는 선거제도 개혁은 국회의원 밥그릇’이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국회를 통과한 예산을 보니, 국민 밥그릇을 걷어차버린 것은 그들이었다.

빈곤 노인들에게 월 10만원의 생계비를 지원하자는 예산은 삭감됐고, 3급 장애인에게 장애인연금을 지급하자는 예산도 사라졌다. 추가된 예산도 있었다. 원래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는 없던 13개의 국도 건설 사업과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 예산이 추가됐다. 이런 후안무치한 정치가 가능한 이유는 선거제도에 있다.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어떻든, 자기 지역구만 챙기면 다음에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선거제도가 문제인 것이다.

이런 정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득권을 가진 정치세력들은 어떻게든 선거제도 개혁을 폄훼하려고 한다. 그래서 선거제도가 ‘국회의원 밥그릇’이라고 왜곡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보든, 외국의 사례를 보든 전혀 그렇지 않다. 선거제도 개혁은 국민 밥그릇을 챙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1918년 스위스에서 선거제도 국민투표를 앞두고 만들어진 포스터. 소선거구제를 상징하는 왼쪽에는 자본가가 식탁을 독점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비례대표제를 상징하는 오른쪽에는 5명의 시민이 식탁에 앉아 음식을 나눠먹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1918년 스위스 전역에는 한 포스터가 나붙었다. 왼쪽에는 탐욕스러운 자본가가 식탁을 독점하면서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그림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5명 정도의 사람이 동등하게 식탁에 앉아 음식을 나눠먹는 그림이 있었다.

이 포스터는 선거제도 개혁을 둘러싼 국민투표를 앞두고 만들어진 포스터였다. 왼쪽의 그림이 표현하고 있는 것은 당시 스위스가 채택하고 있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를 나타내는 것이었고, 오른쪽의 그림이 표현하고 있는 것은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 한 장의 포스터는 ‘선거제도 개혁이 국민 밥그릇’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에서는 힘있고 돈있는 자들의 목소리만 반영되는 정치가 되는데, 비례대표제로 바꾸면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정치가 가능해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포스터 덕분이었는지 그해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스위스 국민 66.8%가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데 찬성했다. 이 개혁은 오늘날의 스위스를 만든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스위스의 포스터가 잘 표현한 것처럼,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에서 다수의 국민들, 특히 약자와 소수자들은 정치의 공간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문제가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특권과 부패를 낳는다. 그래서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보다 공정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첫걸음이다.

마침 내년 1월까지 선거제도 개혁의 문이 어렵게 열렸다. 시민사회의 노력과 야 3당의 단식농성이 만들어낸 결과로 지난 15일 5당 원내대표 간에 합의문이 작성되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방안을 적극 검토해 내년 1월까지 선거제도 개혁안을 합의·처리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이 중요한 일을 국회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은 ‘국민 밥그릇’을 챙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 밥그릇을 챙기는 것은 내가 해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과 연관된 쟁점인 국회의원 숫자 증원에 대해서도 주권자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내년도 국회 예산 6300억원으로 300명의 국회의원을 쓰는 것보다 360명을 쓰는 것이 주권자에게는 이득이다. 국회의원 1명이 받는 연봉, 개인 보좌진 규모를 줄이고, 낭비되는 국회 예산을 개혁하면 가능한 일이다.

이런 상식적인 요구에 대해 물타기를 하고, 쟁점을 흐리는 것은 주로 기득권 정당에 속한 정치인들과 그 동조자들이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대한민국 주권자인 국민들의 현명함을 믿는다.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는 의외로 단순하기 때문이다.

1표의 가치가 공정하게 반영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승자독식의 현행 선거제도로 지금과 같은 사회를 유지할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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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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