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납작하게 산다. 나무처럼 자라고, 꽃같이 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나날이 납작하고 납작해져서 그림자보다도 더 아래로 몸을 숨기는 게 사람의 일생이겠다. 세속의 일상은 이 납작에 저항하는 자세이다. 머리맡의 찬물이 미지근해지는 것처럼 자꾸 납작해지는 그 삶 속에서 큰 고비를 하나 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죽음은/머리도 가슴도 발목이 아닌/ 뒷덜미를 통해 올 것이다// 산 정상 바로 아래 어디쯤/ 불각시에 산불이라도 났을 때 대비하는 헬기장// 햇빛이 바글바글 놀고 있는 공터/ 웬만한 산의 뒷덜미쯤에 있는 공터// 수피가 튼튼한 참나무/ 겨드랑이를 긁고 발목에 쌓인 낙엽을 청소하려고/ 마른 기운을 모을 때// 공중에서/ 턱/ 소방 헬리콥터가 난데없이 나타나듯// 나의 죽음은/ 나의 뒷덜미에 소리없이 착륙하는 것”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설악산에 오르는 길. 한계령에서 끝청을 지나 중청 대피소에서 한숨을 돌리고 대청으로 오르는 데 헬기장이 나타났다. 최근의 그 메모를 떠올리며 설악의 꼭대기를 향하여 남은 힘을 짜낸다. 중청서 대청까지의 짧은 구간은 여간 범상치가 않다. 얼마나 무거운 하늘인가, 잘록하게 늘어진 곡선. 공중의 밑바닥과 설악의 어깨가 만나는 접면을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황홀할 판인데 계절에 따라 진귀한 꽃들이 밭밑에 자욱하다. 우리 딛고 사는 세상을 바다로부터 일으켜 세우는 게 산이라면 그 설악을 이렇게 마지막으로 맵시 있게 마무리하는 건 바로 이 연약한 꽃들.

많은 꽃들이 있었지만 오늘은 바람꽃에 내 마음을 포갠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의 변산바람꽃에서 여름에서 여름의 한 중앙을 지키는 바람꽃까지, 책 한 권을 쓸 만큼 바람꽃 가족은 그 종류가 많다. 이런저런 바람꽃들이 차례로 다녀가는 걸 지켜보다가 아주 높은 곳에서 가장 늦게까지 피어 있는 바람꽃. 설악의 높이에 내 키를 더한다 한들 바람꽃이 빚어내는 이 깊이에 필적할 수 있으랴. 험상궂은 얼굴 모양의 바위 앞에 앉아 첩첩산중의 저 아래를 무정하게 바라보는 바람꽃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바람꽃,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악산의 등대시호  (0) 2019.07.30
계요등  (0) 2019.07.23
설악산 대청봉의 바람꽃  (0) 2019.07.16
백두산의 왕죽대아재비  (0) 2019.07.09
북한산의 병아리난초  (0) 2019.07.02
살구나무  (0) 2019.06.25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