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라고 다 똑같은가? 예를 들어,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때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던지지 않은 사람은 다른 나라 사람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한국인들’을 싸잡아 조롱하면 은근히 짜증 나지 않을까? 나도 한국인이지만, 나는 그를 원하지 않았단 말이다!  

한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는 너무나 다양하다. 인종, 국적, 계급, 연령, 출신 지역, 이념, 취향 등등. 그중 한두 가지만을 가지고 누군가를 쉽게 분류하고 판단하는 거, 당해보면 불쾌하다. 6개월간 유럽에 체류했을 때 다른 국적 청년들과 만나고 대화하며 느꼈다. 말을 나누기 전에 한국인은 이럴 것이라고, 혹은 ‘20대 동양인 여성’은 이런 사람이라고 미리 정해놓은 태도로 대하며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런 녀석들과는 도무지 친해질 수가 없었다.

일본인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당해서 기분 나쁜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자는 모토를 지닌 이로서, ‘일본인’을 모두 싸잡아 혐오하고 배척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 모두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것은 아니듯, 일본인 모두가 아베 정권을 지지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실제로 일본의 경제 보복 이후 일본의 교수, 변호사, 언론인 등이 모여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고 식민지로 지배한 역사를 거론하며 “한국과 대립하더라도 특별하고 신중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당부하는 성명을 발표한 일이 있었다. 결론은 “아베 총리는 일본 국민과 한국 국민의 사이를 갈라놓는 행위를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과거를 사죄하며 독립투사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었던 하토야마 전 총리 또한 최근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거듭 “우애정신”을 강조했다.

이 밖에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작품세계를 견지해온 일본의 예술인들, 제국주의 폭력성과 닿아있는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일본 페미니스트들, 그리고 이번 경제제재로 인한 부담을 떠맡게 될 일본의 노동자들이 떠오른다. 우리와 속 깊은 대화가 가능하고, 손잡을 수 있는 이들. 이런 일본인들과의 민간 교류는 지속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베 정부에 저항하는 일본 내 세력에 힘을 실어주며 일본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려되는 현상이 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 버젓이 ‘미개한 섬숭이’, ‘쪽바리’와 같은 인종주의적 혐오 발언이 전시되는 일이다. 일본인 여행객을 쫓아낸 숙박 업체와 식당의 사례도 들려온다. 한국에 호감 갖고 놀러 왔던 일본인들이, 없던 원한이 생겨 돌아가는 게 작금의 현실을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될까? 양국민이 서로를 적대하는 일은 오히려 지금의 일본 정권이 바라는 일 아닐까.

일부 국내 언론 역시 ‘창조 논란’으로 혐일을 부추긴다. 사람들의 뜨거운 마음을 이용한 트래픽 장사로 보인다. 가장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일본 영화 7편 상영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기자가 만들어내고 싶은 논란 아니었는지? 기자는 “날로 확산하는 일본제품 불매운동 등의 분위기를 생각할 때 (일본 작품의) 상영을 아예 취소하거나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지금 같은 분위기에 항일투쟁의 본고장으로 의병의 도시인 제천에서 일본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썼지만 목소리가 얼마나 높은지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명확하지 않고, 논리도 억지스럽다. 내용은 살피지 않고 특정 국적이라는 사실만으로 문화 교류의 장인 국제영화제에서의 상영 취소를 주장하다니, 문화적 퇴행이다.

성숙하고 자발적인 불매운동? 문제 되지 않는다. 다만 일본인 전체를 혐오하고 민간 교류까지 위축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한국인들의 평가 역시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어쨌거나 그가 존경받을 만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말했다. “외교 하는 국민이 되십시오.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서 외교가 생명입니다. (…) 한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하는 벗들이 많이 생기도록 전 국민이 외교 국민이 되어야 합니다. 19세기와 20세기는 민족주의 시대였지만, 21세기는 세계주의 시대입니다. 우리 모두가 세계인이 되어야 합니다.”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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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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