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동네가 뜨는 몇 가지 패턴이 있다. 임대료가 저렴하고 어느 정도 상권이 형성된 지역에 예술가들이 터를 잡는다. 그들이 공연이나 전시 등을 통해 어떤 움직임을 만든다. 주변에 그 움직임을 동경하는 카페나 술집, 식당들이 생겨난다. 입소문이 나고 새로운 걸 찾는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터진다. 1980년대의 신촌, 1990년대의 홍대 앞, 2000년대의 가로수길이 거쳐온 패턴이다. 또 하나의 패턴은 전통적 주거지나 낙후되어 있던 과거 도심이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다. 아파트가 주거의 일반적인 형태로 자리 잡은 1990년대 이후, 아이들의 성장 배경은 그전에 비해 규격화됐다. 똑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똑같은 극장 체인점에서 영화를 봤다. 전국 어디나 있는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와 커피를 먹었다. 고층 아파트와 빌딩이 빼곡히 들어찬 하늘에 익숙한 이 세대에 붉은 벽돌 단독주택과 저층 건물이 주가 된 풍경은 ‘낡은 새로운’ 것이다. SNS의 등장 이후 이런 동네는 이 세대에 가장 각광받는 곳이 됐다. 그들이 사는 일상과는 다른 배경을 제시했고, 무엇보다 붉은 벽돌의 질감과 색감은 인스타그램에 최적화된 그림을 만들어냈다. 경리단길, 해방촌, 망원동, 을지로 등이 이런 배경을 등에 업고 떴다. 

지금까지 언급되지 않은, 서울의 핫 플레이스는 성수동이다. 여기는 참으로 신기한 지역이다. 강남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고, 강북 중심지까지도 20분 안에 갈 수 있는 천혜의 교통 환경임에도 오랫동안 준공업지대로 남아 있었다. 뒤로는 서울숲이, 양옆에는 한양대학교와 건국대학교라고 하는 거대 상권이 존재하는데도 그랬다. 나이 든 서울 토박이들에게는 ‘뚝섬’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을 성수동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2010년대 중반이다. 디웰 하우스, 카우앤독 같은 공유 오피스&하우스 등이 생겨나면서 스타트업과 소셜벤처 관계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림창고, 베란다 인더스트리얼 등 창고와 공장 시절의 내·외관을 고스란히 간직한 카페들이 인스타그래머들을 끌어들였다.

성수동이 뜬 패턴은 후자, 즉 낙후된 지역의 재발견에 의해서지만 이 동네의 부상은 딱 하나로 설명하기 힘들다. 우선 ‘중심축’이 없다. 어느 동네든 메인 스트리트가 있다. 그게 기존 주민들이 다니던 길이건, 새로운 ‘핫스폿’을 중심으로 형성된 길이건 축이 되는 거리가 있고 이 축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나간다. 가로수길 옆에 세로수길이 만들어지고, 홍대 앞을 축으로 상수, 연남 등이 활성화된 게 그런 예다. 그런데 성수동에는 그런 중심축이 없다. 넓은 필지의 공장과 창고, 아파트형 공장(지식산업센터)들이 사방에 있는 지역이기에 소규모 자본 창업을 위한 공급이 부족하다. 따라서 ‘A카페 옆 B베이커리’ 같은, 일반적 상권의 형태가 존재하기 힘들다. 어니언, 성수연방과 같이 아예 대형 창고와 공장을 리모델링해서 운영하는 업체들도 있지만 소수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른 동네와 달리 성수동의 핫 플레이스는 대개 점으로 존재한다. 스마트폰으로 지도 앱을 켜고 다니는 문화에 최적화된, 보물찾기의 지역이다.

또 하나 ‘밤’이 없다. 모든 상권은, 특히 한국에서는 2차와 3차에 최적화된 술집들이 존재한다. 1차로 배를 채운 후 2차에서 본격적으로 달리고, 3차로 마무리한다든가 하는. 하지만 성수동의 야경은 어둡다. 1차로 갈 만한 곳은 많으나 2차로 갈 수 있는 곳은 극히 제한적이다. 3차는 더 그렇다. 지역에 새롭게 입주한 젊은이들도 늦은 시간이 되면 다리를 건너거나 건대 앞으로 간다고 하니 대략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성수동이 원래부터 ‘노는 동네’가 아니라 ‘사는 동네’이자 ‘일하는 동네’였으며, 건대나 한양대 등 기존 상권에서 유입되고 확장된 상권 또한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특성들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성수동이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공장과 창고들이 원체 크기에 쉽사리 재개발, 재건축하기 어렵다. 놀러 와서 소비하는 시간이 제한적이기에 주거지의 급속한 상업화가 일어나기 힘들다. 한 탕을 노리고 들어오는 이들에게 진입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낙관적인 예측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선의가 아니라 구조가 프랜차이즈화의 파도를 막는 방파제가 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일반 칼럼 > 문화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럼에도 나는 왜 야구를 볼까  (0) 2019.05.23
괜찮아요  (0) 2019.05.09
성수동의 재발견  (0) 2019.04.25
관용어  (0) 2019.02.14
양심  (0) 2019.01.17
이 세계는 어디나 궁지  (0) 2018.12.20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